16개월 동안 동결돼온 한국은행의 '식물 기준금리'가 결국 깨어났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9일 기준금리를 연 2.0%에서 2.25%로 0.25%포인트 올렸지만 분위기를 살피면 연내 한 차례 정도의 추가 인상이 확실해 보인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정례회의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상승세 지속에 따른 수요 증대 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커질 것"이라며 "물가가 하반기에는 3%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고 내년에는 필히 3%를 넘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은의 정책 궤도가 '경기부양'에서 '물가수호'로 완전히 넘어간 것이다.
문제는 잠재된 뇌관으로 자리해온 가계대출이 금리인상 과정에서 우리 경제의 짐으로 본격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가계신용은 지난 3월 말 현재 739조1,000억원에 이른다. 일반 개인들이 저금리의 단맛에 취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에만 2조7,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집은 거래되지 않는데도 증가액은 5월(2조3,000억원)보다 더 증가한 것이다. 전형적인 '저금리의 폐해'다. 김 총재도 이날 간담회에서 "낮은 금리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계속 늘어나는 유인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굉장히 큰 문제를 내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금리인상은 달콤한 빚의 향기를 즐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신호인 동시에 인위적으로 억눌러온 부채의 부실문제가 수면 위로 노출될 수 있음을 알리는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기준금리 인상분만큼 은행과 2금융권이 변동금리형 대출 금리를 올리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연간 2조4,000억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은행들은 다음주부터 대출금리 인상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양도성예금증서(CD)에 연동하는 대출은 예대율 규제로 은행들이 CD 발행을 거의 하지 않아 시중금리 상승폭을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어 오름폭이 커질 수 있다. 이날 91일물 CD금리는 하루에만 0.17%포인트 급등했다.
가뜩이나 주택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집값마저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출이자 부담까지 높아지면서 가계는 말 그대로 '3중고'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연내 한 차례 추가 금리인상이 이뤄지면 가계 부문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변동금리형 모기지가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금리상승 기조는 거래가 안 돼 집을 처분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가계에 직격탄을 가할 수 있고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가계발 금융위기도 생각할 수 있다"며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포함한 정책적 수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