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4월 15일] <1671> 혈통과 돈의 결혼


야심만만한 24세의 영국 청년이 다섯 살 아래 미국 처녀에게 푹 빠졌다. 1873년 8월 선상 파티에서 만난 지 3일 만에 청혼. 처녀의 어머니는 청년의 접근을 막았다. 미국 유수의 갑부 집안이라는 자신감에서다. 자신감은 곧 조바심으로 바뀌었다. 상대가 7대 처칠 공작의 둘째아들 랜돌프 처칠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명문가와의 혈연을 위해 미국 부호는 공을 들였다. 마침 처칠 가문도 돈이 궁하던 상황. 장인이 될 레너드 제롬이 악명 높은 주식 투기꾼 출신이라는 점이 걸렸지만 신부가 지참금 5만파운드를 가져오는 조건으로 혼사를 진행시켰다. 1874년 4월15일 파리의 영국대사관에서 결혼. 혼인 두 달 전 하원의원에 당선된 랜돌프와 뉴욕 최고 미인으로 꼽히던 제시 제롬의 결혼은 유행을 낳았다. 돈은 많아도 '고귀한 혈통'과 거리가 먼 미국 부호의 딸들이 유럽 귀족가문에 잇따라 시집오고 '달러 공주'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처칠 부인 제시는 타고난 미모를 무기로 런던 사교계를 주름잡았다. 랜돌프가 37세에 하원의장 겸 재무장관에 오른 것도 내조 덕이다. 숱한 염문을 뿌렸던 제시의 애인 명단에는 국왕 에드워드 7세까지 포함돼 있었다. 랜돌프가 매독 합병증으로 사망(45세)한 뒤 제시는 스무살 연하의 근위대 대위와 재혼해 화제를 뿌렸다. 재혼 14년 만에 이혼하고 63세 때 40세 남편을 맞아들이면서도 귀족 신분을 말해주는 '레이디 랜돌프'라는 호칭은 포기하지 않았다. 제시는 스캔들보다 첫째아들의 어머니로서 더 기억된다. 신혼부부가 급했는지, 태아가 급했는지 결혼 일곱달 반 만에 태어난 칠삭둥이 아들은 훗날 영국 총리에 올라 2차대전의 승리를 이끌고 말년에는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윈스턴 처칠이 바로 원조 달러 공주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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