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실체 브라이언 크루버 지음/ 영진닷컴 펴냄
지난해초 터져나온 미국 에너지회사 엔론의 파산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영업부진에 따른 점진적인 경영 악화가 아니라 조직적인 회계부정과 비도덕적인 기업 경영이 파산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기 때문. 더구나 아시아 금융위기이후 `기업의 투명성`과 `회계절차의 공정성`을 그 어느 나라보다 강조해 온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이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더욱 경악케 했다.
`탐욕의 실체`를 쓴 브라이언 크루버는 2001년 12월 엔론에서 해고된 4,500여 명중 한 사람으로 텍사스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약 1년간 엔론의 위험관리상품 등을 취급하는 금융파트에서 일했다. 크루버가 책 곳곳에서 폭로하는 엔론의 회계조작 수법은 한국(?)과 같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어서 과연 엔론이 자본주의 대국 미국의 재계서열 7위 기업이 맞느냐는 의구심을 불어 일으킬 정도이다.
`은행 돈이 필요한 엔론은 고위 경영진중 한 명으로 위장 계열사를 만들게 하고 그 기업으로 하여금 대신 돈을 빌리게 한다. 그리고는 그 위장 계열사에 뭔가를 파는 것처럼 꾸며 위장 기업이 빌린 은행돈을 마음껏 빼내 쓴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비슷한 일이 벌어졌듯이 위장 계열사 설립과 원시적 회계조작이 `세계 최고의 기업`에서 그대로 연출된 것이었다. 엔론이 파산 당시 자금조달을 위해 전세계에 설립한 회사는 케이먼군도등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900여개의 역외 펀드를 포함, 모두 3,500여개. 외부 투자가의 자본이 3%만 넘으면 자회사가 아니라는 회계기준을 악용한 것이다. 이 같은 무차별적인 자금조달로 엄청난 부채를 숨기고 막대한 수익을 내는 것으로 꾸미는 것, 이것이 지방의 작은 가스라인 운영업체였던 엔론을 10년만에 미국 최고 기업중 하나로 키운 비결이다.
더욱 더 문제인 것은 최고 경영진들의 도덕 불감증. 원초적 회계조작으로 엔론과 협력회사들의 경영진들은 출세의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면서 거대한 `바벨탑`의 실체에 접근하지만 그 누구도 정체를 밝히려 하지 않았다. 천문학적 규모의 경영진 보수, 스톡옵션, 회사에서 대신 내주는 기업연금,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BMW추첨 행사 등이 전 임직원들을 회계부정의 공모자로 길들여 왔던 것. 이를 바탕으로 한 기강 해이, 성적 문란 등도 엔론의 몰락을 재촉했다. 회계감사기관이었던 아서앤더슨도 직원 수백명을 파견해 엔론의 회계부정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저자는 `엔론이 회계감사기관을 장악하는 일은 아주 쉬웠지 . 엔론은 위장된 장부를 열심히 조사하던 내부 회계감사원들을 쫓아내고 대학을 갓 졸업한 아서앤더슨의 신입 회계사들을 고용한 거야`라고 아서앤더슨에서 일했던 자신의 친구가 보낸 이메일을 공개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기업 경영에 있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독립적인 이사회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회사 경영진들이 이사회를 장악해 버린 상황에서는 이사회 역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독립적 이사회뿐 아니라 노조등 다른 감시체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추천사에서 스티브 살브 텍사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본주의 기업내에서 도덕적인 견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잘 대변하고 있다. “(대학은) 야망이 크고 유능하며 성공에 집착하는 기업 지도자들에게 고결한 윤리와 도덕적 결정을 따르도록 하는 윤리근육을 단련시켜주지는 못한다. 이들이 윤리근육을 갖춘 진정한 전문가로 거듭날 때까지는 우리는 파산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한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