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이라크전, 2위 SK글로벌 사태, 3위 카드채 문제.`
국내 한 증권사가 지난 상반기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친 대형사건의 순위를 매긴 것이다. 국내 사건으론 SK글로벌 사태가 최대 이슈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혜성처럼 등장,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열흘 만에 SK㈜의 최대주주가 된 모나코 소재 `소버린 자산운용`이었다.
그러나 SK글로벌 사태가 잠잠해지고 삼개월이 지나도록 소버린의 실체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S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소버린의 성격을 “정상적, 상식적, 원칙적에 비(非)자만 붙이면 된다”고 규정하기도 했다.
소버린은 SK글로벌 사태가 터지자 호재라도 만난 듯 1,800억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돈을 SK㈜ 지분 매입에 썼다. 소버린 스스로 `블랙홀`이라고 지칭한 SK글로벌의 최대주주가 SK㈜다. 정상적, 상식적 투자자라고 여기기엔 특이함을 넘어서 이상하게 보이는 행태다.
오락가락하는 소버린의 행보는 의심을 넘어 의혹을 산다. 소버린의 지분 매입을 주도했던 제임스 피터 최고운용담당 임원은 지난 4월 한국을 떠나면서 2주안에 돌아올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아직 함흥차사다. 5월 언론을 대상으로 열려던 설명회도 하루 만에 황급히 거둬들였다. SK㈜ 지분을 팔겠다고 협박하던 소버린이 6월 갑자기 지분을 팔 계획이 없다고 말을 바꾼 데선 절정에 이른다.
소버린 측은 엉뚱한 대답으로 항변한다. 한국 언론이 무섭다는 것. 정확한 실체를 밝혔는데도 언론이 `외국인`이라고 투자이유를 왜곡하며 푸대접할 것이란 얘기다. 펜이 칼보다 무서운 것인지는 모르나 마피아의 살해 위협도 뚫고 러시아에 투자했다는 소버린측의 무용담을 생각 할 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국제화 시대에 외국인 주주라고 홀대하고 불신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귀빈이다. 다만 SK㈜의 경우, 주인의 실체와 국적 등이 중요한 이유를 간과해선 안 된다. SK㈜는 한국에 유일하게 남은 국내 자본의 정유사이며 국내 최대 이동통신 회사의 모회사다.
소버린이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의심과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운용자산 규모 등 기초적인 자기 소개만이라도 하기 바란다. 한국경제에 투명성을 요구하는 소버린에 투명성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까.
<손철 기자(산업부) runir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