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의 일이다. 백월산(白月山) 무등곡 북쪽 사자암에는 달달박박이 8척방을 만들어 살았고 동쪽 바위 아래 물가엔 노힐부득이 살았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친구 사이였는데, 각자의 암자에 살면서 노힐부득은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고 달달박박은 아미타불을 경례하고 염송했다.
몸소 이타주의 실천한 노힐부득
이들이 수행한 지 3년, 709년 4월8일은 성덕여왕이 즉위한 지 8년째 되던 날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물들 무렵, 나이 스무살에 가깝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난초 향기를 풍기면서 달달박박의 암자에 찾아와 갑자기 자고 가기를 청하면서 글을 지어 바쳤다.
‘나그네 가는 길. 해가 저물어 천산이 어둡고 길은 막혀 성은 멀고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은 암자에서 잠을 자고 싶은데 자비스런 스님께서 노하지 마소서’라고.
수행 중인 달달박박은 “절은 깨끗해야 하는 것이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어서 다른 데로 가고 여기서 머물지 마시오”라고 말하고 문을 닫아 외면했다.
청을 거절 당한 여인은 하는 수없이 노힐부득을 찾아가 전과 같이 청하니 노힐부득은 “야심한 밤에 어디서 왔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여인은 “해 저문 깊은 산속이라 가도 가도 인가를 찾을 수 없지만 잠잘 곳 찾는 것은 길 잃어서가 아니라 스님을 인도하려 함이니 바라건대 오직 내 청만 들어주고 다시는 길손이 누군지 묻지를 말라”고 답했다.
여인의 말을 들은 노힐부득은 몹시 놀랐지만 “이곳은 여인과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요,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라고 말하며 그를 암자로 맞이했다.
여인을 암자로 들인 노힐부득이 희미한 등불 아래서 염불을 하던 중, 여인이 다가와 자신이 산고가 있으니 짚자리를 준비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여인을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촛불을 비추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또다시 목욕하기를 청했다. 노힐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얽혔으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보다 더해서 마지못해 목욕통을 준비해서 낭자를 통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키니 이미 통 속 물에서 향기가 강하게 풍기면서 금물로 변했다.
이를 보고 크게 놀란 노힐부득에게 “스님도 이 물로 목욕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인은 말했다. 노힐부득이 여인이 말에 따라 물에 몸을 담그니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고 살결이 금빛으로 변했으며 그 옆을 보니 졸지에 연화대 하나가 생겼다. 여인이 노힐부득에게 앉기를 권하고 말했다. “나는 관세음보살인데 와서 대사를 도와서 대보리를 이루도록 한 것이오”라고.
한편 달달박박이 ‘노힐부득이 오늘 밤에 반드시 계를 더럽혔을 것이니 비웃어주리라’ 고 생각하고 가서 보니 노힐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돼 광명을 발하고 그 몸은 금빛으로 단장돼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최근의 뉴스를 통해 접하는 사건ㆍ사고 소식은 개인주의ㆍ이기주의의 심화 때문에 발현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치ㆍ경제ㆍ사회면을 장식하는 대부분의 사건ㆍ사고가 개인의 영달과 사욕만을 위하다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발생되는 불행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사제의 도리에 곧잘 비유되는 안행피영(雁行避影)이라는 글이 있다. 기러기는 앞서 가는 기러기의 그늘마저 범하지 않고 난다는 뜻인데 어찌 사제ㆍ부모ㆍ선배에게만 이를 적용할 수 있겠는가. 매일 매일 마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해야 마땅할 것이다.
상대방 배려하고 이해심 키워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때문이다. 노힐부득처럼 입으로가 아닌 오직 행동으로 이타주의를 실현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잡아 줄 수 있는 이타주의가 충만한 세상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희망하는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