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입법전쟁] [시론/7월 15일] 비정규직 실용적인 해법 찾자

최영기(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前한국노동연구원장)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보호법(이하 비정규직법)’은 이제 생사의 갈림길을 벗어난 듯하다. 아직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동안의 경과를 볼 때 이미 끝난 게임으로 예상된다. 남은 과제는 법 개정이 왜 실패했는가를 밝히고 당분간 현행법이 시행된다는 전제에서 보완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법 개정 실패의 원인을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나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완강함에서 찾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법 개정의 정당성을 따져봐야 한다. 당초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적인 규제수단을 들이댄 것이 잘못일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난 2003년 이후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와 차별 실상이 밝혀지면서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이를 배경으로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가 대량해고 위험 더 키워
다행히 법 제정을 전후해 비정규직 증가 추세가 꺾였고 차별 개선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2006년의 입법은 하나의 사회적 선택이었고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 상한을 2년으로 제한하는 방식은 그래도 고용쇼크를 줄이는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2년 전 만든 법을 시행도 해보지 않고 개정해야 하는 논리적 근거나 통계적 증거가 불확실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시행을 유예하거나 기간을 1~2년 더 연장한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다”는 주장이 해고대란에 대한 경고보다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논리적 타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법치와 시장경제의 원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만약 정부의 요구대로 법이 개정됐을 경우 그동안 법 시행에 대비해 비정규직 고용관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왔던 많은 기업들이 오히려 ‘벌’을 받는 꼴이 된다. 이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다. 7월1일을 기해 기간제한 조항이 처음으로 법적 강행력을 갖게 됐지만 엄밀히 말해 이 규정은 이미 2년 전부터 발효됐던 것이다. 금융기관을 비롯한 민간 대기업에서 해고대란이 없었던 것은 그동안 치밀하게 대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법을 고친다면 이들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쓸데없는 돈을 쓴 것이 된다. 법 개정의 주된 근거가 됐던 해고대란 문제도 좀 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기간제한 규제가 의도하는 바는 반복갱신의 계약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법 시행 첫 해는 그동안 누적돼왔던 장기 계약근로자들의 계속고용 여부를 결정하고 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기간제한의 효력이 발생하는 첫 해에 대량해고의 위험이 있었던 것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책적 보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회안전망 비용 분담해야
그런데 오히려 정부가 앞장서 법 개정 기대를 키우면서 대량해고 위험이 증폭된 측면도 있다. 많은 공기업과 중소기업이 마지막 순간까지 법 개정을 기다리다가 급한 김에 일단 해고를 선택했을 수 있다. 정부의 법 개정 요구가 담고 있는 진실은 법만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주장에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고비용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병행되지 않은 채 정부가 법으로 비정규직을 없애려고 해도 안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부분 동의한다. 문제는 근본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해법이 무엇인가다. 해고제한을 대폭 풀자는 일각의 주장은 교과서적인 타당성은 있지만 실용성이 없다. 우리 사회에 아직 법 개정을 위한 갈등관리 능력이 없고 그런 고용 유연성을 감당할 사회안전망 투자의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 기업과 정부가 사회안전망 비용을 분담하고 가야 한다. 정부는 오히려 복수노조 전임자 문제를 통해 노사관계를 유연화하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대안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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