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성년후견제도 시행해보니…] "후견인 횡령 무방비… 별도 감독기관 세워야"

조사관 1명이 수백명 후견인 전담… 범죄 예방·적발 사실상 힘들어

후견인 동의없이도 정신병원 입원… 은행 등선 제도 몰라 서비스 제한

독거치매노인은 제대로 이용 못해… 제도 보완·표준매뉴얼 보급 절실

지난 2014년 7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성년후견제 시행 1년 점검'' 심포지엄에서 서울가정법원과 법조계, 학계 등 전문가들이 성년후견제도의 개선점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법무법인 율촌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가로채는 등 범죄에 악용할 가능성도 커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성년후견제도는 발달장애, 치매 등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돕는 제도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손과 발이 돼 병원 진료·입원, 은행·관공서 업무, 재산관리 등 사무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과거에는 장애인을 금치산자(법률상 무능력자)라 해서 각종 법률행위를 제한하는 데 급급했다면 후견제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후견인을 통해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특징이다. 게다가 정신 능력이 감퇴하는 노인들도 주 이용 대상이기 때문에 고령화 사회에 연착륙하기 위한 대안으로도 각광받았다.


하지만 성년후견제도의 현주소는 이러한 취지나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다.

◇후견인 횡령 막을 시스템 부실=지난 2013년 국내 한 기업체 회장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그의 아들과 부인이 서로 후견인이 되겠다면 법정 싸움을 이어갔다. 자식이 없는 한 자산가가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조카들이 후견인 자리를 노리고 자산가에 접근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재산을 두고 서로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선 사례들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후견인은 자신의 생활을 희생해가면서 피후견인을 위해 봉사하는 힘든 일이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희생'보다는 피후견인의 '재산'만 보고 후견인을 자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런 경우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빼돌리는 횡령·배임 등 범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성년후견제가 안착하려면 후견인이 제대로 활동하는지를 감시·감독·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후견인에 대한 감독은 가정법원의 조사관 1명이 사실상 전담하는 실정이다. 법원 허가를 받은 후견인(지난 2월말 기준)이 461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견인 범죄를 예방하거나 적발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이현곤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는 "후견감독인을 양성하고 관리하는 감독전문기관을 별도로 만드는 등 감독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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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배우자나 자녀 등이 후견하는 친족후견인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친족 간 재산범죄는 '친족상도례' 원칙이 적용돼 처벌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후견인에 한해 친족상도례 원칙을 적용할 수 없게 해 친족 후견인의 권한 남용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 미비·홍보 부족으로 속수무책= 후견인 A씨는 지난해 자신이 후견하는 B씨가 갑자기 사라지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B씨 가족들이 후견인에게 얘기도 않고 B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버린 것이다. 때문에 A씨는 졸지에 후견 업무를 사실상 중단해야 했다.

피후견인의 병원 입원, 거주지 이동 등을 관리하는 건 후견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관련 법이 정비되지 않아 후견인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신 병원 입원이다. 정신보건법은 가족 등 보호자의 동의만으로 환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후견인이 선임되면 정신병원 입원 같은 중대한 사안의 경우 후견인 동의 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하지만 아직 규정이 고쳐지지 않아 A씨와 같은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은행, 관공서 등에서 성년후견제를 제대로 알지 못해 후견인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후견인 교육을 담당하는 성민성년후견지원센터 관계자는 "한 후견인이 뇌사 상태에 있는 피후견인을 대신해 은행에 카드를 발급하려 갔는데 직원이 '카드 발급은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한다'고 거부해 낭패를 본 일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금융기관이나 관공서에 후견인을 상대할 때 필요한 '업무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도 사각지대 놓인 10만 독거치매노인=가족 없이 홀로 살면서 치매까지 앓고 있는 노인에겐 후견인 서비스가 절실하다. 이들은 장기요양급여, 기초연금 등 정부 지원을 받지만 이를 관리할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복지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액수를 올리는 등 복지 지원을 강화해도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복지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독거치매노인이 성년후견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제철웅 한국성년후견학회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독거치매노인의 이웃 등이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연금을 빼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1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이런 어르신에게 후견인이 절실하지만 정부가 이들을 연계해주는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아 제도 이용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비판했다.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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