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하기 위한 '예산국회'가 사실상 파행으로 시작됐다.
국회는 예산심의 첫날인 8일 9개 상임위를 가동했으나 예산안 심사를 밀어둔 채 검찰의 국회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을 비판하느라 하루를 보냈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검찰의 청목회(청원경찰친목도모협의회) 입법로비 의혹 수사를 비난했다. 다만 표면적으로 여야 간 온도차는 분명했다.
민주당은 정권 규탄대회를 열며 여권이 '대포폰 의혹'을 덮기 위해 '청목회 의혹'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검찰 소환시 불응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국정조사와 법무장관 탄핵 추진을 거론하며 강경하게 나섰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권 개입 의혹을 부정했고 야당에 자제를 당부하며 수위를 조절했다. 특히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신중하지 못했다며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공정ㆍ신속한 수사진행을 촉구했다.
이날 열린 9개 국회 상임위는 대부분 검찰의 압수수색을 질타했다. 외교통상통일위ㆍ환경노동위ㆍ기획재정위 등 직접 관련이 없는 상임위에서도 '입법부가 유린당한 마당에 예산안 심사를 할 수 없다'는 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이 연이어 터졌다. 문화체육관광통신위에서는 여당 소속인 정병국 위원장이 "정치자금법을 만든 중심에 있던 사람으로서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직접 관련된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와 행정안전위는 예산안 논의 대신 각각 이귀남 법무장관과 조현오 경찰청장으로부터 긴급현안보고를 받고 검찰의 압수수색 경위 등을 따졌다.
법사위에서는 여당이 검찰의 압수수색의 허점과 과잉을 꼬집었다. 김무성 의원은 "국회의원 후원금은 가장 투명하게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이고 검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자료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우리나라 초유의 행사를 앞두고 벌집 쑤시듯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이정현 의원은 "(검찰 압수수색 당시) 11곳의 영장은 모두 진본이어야 하는데 영장은 한 통만 발부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검찰의 압수수색은 여권 수뇌부가 정국을 원하는 대로 흐르게 하려는 의도 탓이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전날 '당정청 9인 회의' 에서 검찰에 불구속ㆍ벌금형으로 완화하도록 지시했다면서 '여권 개입설'을 제기했다. 또한 박영선 의원은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이 '대포폰 정국'의 배후에 있다는 정황을 덮으려 압수수색에 들어간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귀남 장관은 여야의원들의 지적을 모두 부인했으며 특히 대포폰 의혹을 덮기 위해 압수수색을 했다는 지적에 "차명폰과 관련, 공직윤리지원관실도 압수수색이 늦어 증거 인멸이 있던 것처럼 청목회 관련자도 압수수색을 하려면 진즉에 했어야 했다" 고 반박했다.
국회가 하루 종일 어수선한 가운데 여야 원내대표는 해법을 찾기 위해 부심했다. 두 사람은 박희태 국회의장 주재로 점심을 함께하며 각종 현안을 논의했으나 본회의 긴급현안질의를 요구한 박지원 원내대표와 모든 현안을 일괄타결하자는 김무성 원내대표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다만 두 사람은 계속해 연락을 취하면서 대안을 모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