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월드 파노라마] 일본 기업들 지주회사 설립 붐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세계 2차대전 이후 구 재벌의 부활을 막기 위해 금지해온 지주회사의 설립이 지난 97년부터 허용된 이래 전자, 자동차, 유통, 금융 등 모든 업종에 걸쳐 구조조정과 경영합리화의 일환으로 지주회사 설립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본 최대의 통신업체인 일본전신전화(NTT)의 미야즈 준이치로(宮津純一郞)사장과 7명의 간부들은 지난해 11월30일 3개 그룹으로 나뉘어 런던, 뉴욕,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정부 보유분을 제외하고 외국인 주주비율이 20%를 넘는 NTT는 매년 이 시기에 해외투자가를 위한 회사설명회(로드쇼)를 하고 있지만 올해는 7월로 예정된 지주회사 설립을 앞두고 있어 로드쇼 기간도 예년의 2배인 2주로 늘리고 방문처도 500개사 이상으로 잡는 등 상당히 신경을 썼다. NTT는 지난 96년말 우정성과 10년간 끌어오던 분할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99년 7월, 순수 지주회사 아래 국내 통신사업부문을 담당할 동부 및 서부지역통신회사와 국제전화를 포함하는 장거리 국제통신회사의 3개 부문으로 분리키로 합의했다. 공정경쟁의 입장에서 완전 분할을 요구해 온 우정성과 경쟁력 유지를 위해 공동경영을 추구해 온 NTT가 타협점을 찾아 합의한 게 지주회사 방식이다. NTT는 지난 1월25일 지주회사를 포함한 4개 사업부의 본부조직 구성과 주요 인사를 완료했으며 현재 14만5,0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을 각 사업부로 배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NTT의 한 관계자는 지주회사에 3,500명, 동부지역 통신운영회사에 6만1,000명, 서부지역 통신운영회사에 6만7,500명, 장거리 전회회사에 6,500명이 각각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내 영업회사들을 각 현에 한개씩 47개로 통폐합하고 이들 영업회사는 동부 및 서부회사의 감독을 받도록 할 방침이다. NTT는 오는 5월 중순 우정성에 이러한 내용의 구조조정 계획서를 제출하고 6월말 주주총회의 승인을 거쳐 7월부터 2차대전 이후 최초의 순수 지주회사로 새롭게 출발할 예정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격화되고 있는 국제 자동차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오는 2000년께 지주회사를 설립, 그룹 산하 다이하츠공업과 히노자동차 공업을 사실상 흡수할 방침이다. 도요타그룹은 신설되는 지주회사 밑에 일반 승용차 및 소형차 부문을 담당하는 도요타와 경·소형차 부문을 담당하는 다이하츠, 트럭부문의 히노 등 3개사로 분할하고 지주회사가 이들 3개사의 개발에서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기본전략을 총괄할 방침이다. 또 일본 주요 전자회사인 히타치(日立)와 도시바(東芝)도 21세기 국제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주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히타치는 지주회사 설립을 계기로 생산분야의 2개사를 신설키로 하고 지난해 에어컨과 냉장고 생산라인을 분리했다. 도시바도 15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는 판매조직을 6~8개로 축소하고 가전, 전자부품, 통신, 오디오-비주얼 부문 등을 별도 조직으로 분리할 예정이다. 이밖에 종합상사인 마루베니(丸紅)도 오는 2001년 4월에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키로 하고 도쿄 본사에 있는 기획본부를 지주회사로 전환한 다음 약100개의 사업장을 식음료, 섬유 등 8개 자회사로 분리할 계획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거액의 불량채권으로 국제경쟁력이 약화된 금융기관의 재생을 위해 지주회사 방식을 활용한 업계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은행, 증권, 보험 등 영업형태가 다른 금융기관이 지주회사의 산하로 편입될 경우 종합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경쟁력이 제고될 것으로 판단, 지주회사 방식의 재편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지주회사란 지주회사란 주식 소유를 통해 타회사의 지배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를 말한다. 타회사 주식 소유 이외에 스스로 사업도 하는 사업 지주회사와 주식보유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순수 지주회사의 2종류가 있다. 순수 지주회사는 분사를 통한 사업의 분리 매각 등 구조조정과 사업의 진입·퇴출이 용이해 노사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합병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단지 주식을 통한 지배관계로 맺어져 있어 일부 자회사의 경영이 악화되더라도 다른 계열사로 파급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한마디로 경영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지주회사의 설립을 허용하고 있으나 한국과 일본만유일하게 경제력 집중과 재벌의 폐해를 우려해 지금까지 순수 지주회사의 설립을 제한해 왔다. 그러나 일본은 2차대전 이후 52년만인 지난 97년 12월 순수 지주회사의 설립을 허용했고 98년 3월에는 금융 지주회사의 설립도 허용했다. 한편 한국도 최근 사업의 분리, 매각, 외자유치 등 기업구조조정을 보다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함에 따라 오는 4월1일부터 순수 지주회사의 설립이 제한적으로 허용될 예정이다. 【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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