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영국 국빈 방문에서 "6자회담 타결 전에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은 낮다"고 밝힌 것은 `북핵 문제 진전이없다면 정상회담 추진도 어렵다'는 현실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과거 입장이 `희망론'에 무게가 실려있었다면 그 중심이 `현실론'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에 돌입하거나 그렇지않으면 북핵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경우' 남북 정상회담을 열 수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북핵 돌파구를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찾을 수도 있다는인식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3일 "과거 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관련 언급에 희망과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면, 런던 발언은 국제정치의 역할 구도를 고려한 현실론에 바탕을두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러한 방향 선회는 6자회담 프로세스를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실익'이 도출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은 적어도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이나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팽팽한 협상이 이뤄지는 동안에는 별로 큰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남북 정상회담과 6자회담의 상관관계를 나름대로 분명히 정리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의지는 지난 달 칠레 APEC(아.태경제협력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의 틀 내에서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한 데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국내 진보세력 일각에서는 대북 포용론을 바탕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평양→워싱턴' 루트로 풀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해왔다. 노 대통령의 런던 언급이 이들의 반발을 부를 공산이 있다는 관측도 없지는 않다.
사실 노 대통령이 `현실론'에 무게를 두고 나선 것은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과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2002년 10월 이른 바 제2차 북핵위기가 불거진 이후 2년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핵을 가질 능력도 의사도 없다' 주장하던 북한이 이제 `핵 억지력' 운운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집권 1기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그대로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실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2000년 6월의 1차 남북 정상회담이 `냉전과 대결'을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하는 회담이었다면 2차 정상회담에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평화'가 의제로 논의돼야 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평화'를 다루는 남북 정상의 대좌야말로 미국의 `개런티' 없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인식 또한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남북 정상회담을 완전히 `환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또 `평화'가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가 되려면 그 첫 단계로 남북간에 수도권을겨냥한 북한의 장사정포 제거가 논의돼야 하는데 이 역시 난제로 꼽힌다.
북한의 장사정포를 비롯한 재래식 무기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핵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맡는 이른바 `역할분담론'이 우리 정부의 희망이지만 미 행정부 내에는이조차 반대하는 입장이 만만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우선순위를 둔 노 대통령이 한국의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어떻게 이끌어 낼지 주목되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