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1월 8일] 치상(痴床)에 앉은 교과부 공무원

수원가톨릭대는 천주교 사제 양성을 주목적으로 하는 단일학부의 특수목적대학이다. 총 입학정원은 90명에 불과하다. 평신도 지도자를 꿈꾸는 일반인도 다니지만 대부분 성직지망생이다. 이 학교의 지난 2009년 신입생ㆍ재학생 충원율은 50%대 였고 취업률은 10%에 그쳤다. 지표상으로 보면 딱'부실대학'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9월 이 대학을 정부지원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으로 선정했다. 대학 측은 신입생ㆍ재학생 충원율이 낮은 것은 성직이라는 특수성으로 지원자가 제한되고 훌륭한 성직 지망생을 뽑기 위해 입학전형을 엄격하게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또 수도원 소속 학생들은 학부를 졸업하고 1년간 수련기간을 거쳐 대부분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수련기간 중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미취업자로 분류됐다고 주장했다. 성직자 양성기관이라는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해명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문제는 교과부가 이 대학이 종교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인지 전혀 몰랐고 신학과만 있는 대학임에도 종합대학으로 간주하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교과부 담당자들은 현장 실사와 점검을 전혀 나가지 않았다. 오로지 책상에 앉아서'대학알리미'에 올라온 자료만 가지고 평가했다. 해당 대학에는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인데도 말이다.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평신도 재학생 일부가 등록금이 모자라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원가톨릭대는 명단 발표 후 이들의 대출금을 모두 갚아버렸다. 그리고는 앞으로 학자금이든 일반대출이든 정부지원 학자금대출을 일절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학은 5일 재평가 결과 대출 제한 대상에서 제외됐다. 오는 2020년이면 고교 졸업생이 대학 입학 정원보다 10만명 가량 부족해진다. 부실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의 구조개편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교과부가 학자금대출 제한을 통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의지는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담당자들이 현장에 나가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사업을 추진하는 자세는 곤란하다. 당나라 사람들은 어사대를 '치상(痴床 ㆍ바보 책상)'이라고 불렀다. 똑똑하던 사람도 높은 자리에 오르면 교만해져 바보가 되는 것을 조롱한 말이다. 현장과 괴리되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정책이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은 것을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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