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정축년 한해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지나온 자취를 생각하게 마련이다.중국의 채근담에서 이르기를 「지나온 과거가 오늘이 될 수 없고 오늘 또한 내일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는 「소중하게 맞는 시간은 보람을 남겨놓고, 부질없는 시간을 보내면 후회뿐」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평범한 진리 같지만 경제위기를 맞는 요즈음 새삼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백달러밖에 되지 않던 지난 60년대, 우리는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온갖 힘을 다 기울였다. 그때는 오로지 땀흘려 일하는 것을 소중한 미덕으로 삼았다.
이후 불과 10여년이 지난 70년대, 드디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고 개발도상국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80년대 또한 선진조국창조를 지상목표로 삼아 근면·성실·절약으로 「아시아의 네마리 용」 중 하나로 거듭났다.
이를 바탕삼아 높은 시민의식 속에 개최한 88서울올림픽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밖에서 우리를 바라본 외국인들이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고 했던 진심어린 충고를 흘려버린 90년대이다.
정작 중요한 때 우리는 중남미 국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교만을 부리고 말았다. 문제가 제기되면 성장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나 지난 시대의 과오로 치부하기도 했다. 이것도 모자라 경제위기가 코앞에 닥친 상황까지도 안이한 자세로 일관해버렸다.
민주주의 기본원리인 조정과 타협, 그리고 가장 필요로 하는 합리적인 행정논리와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정치권은 또한 어떠했는가. 경제논리보다는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앞세워 궁극적으로 국가이익과 직결되는 금융개혁볍 처리조차 뒤로 미루고 말았다.
기업의 경우 금융차입에 의존한 무리한 확장, 노사갈등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려는 피나는 노력을 하기보다 국내에서의 순위다툼에만 전념함으로써 세계정보를 읽는 안목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30년 사이 고도성장을 이루었던 세계 제일의 높은 교육열과 굳은 신념, 근검·절약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번 불을 지피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민족혼이 있다.
추락의 끝자락에서 IMF란 끈을 잡고 다시 올라서는 거다. 거꾸로 간 세월을 되찾아 밝은 내일을 기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