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환경오염으로 도시 근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개천이나 웅덩이의 물 위에 빙글빙글 작은 원을 그리며 떠도는 물매암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등딱지의 크기가 3-4 미리미터에 불과한 이 작은 갑충(甲蟲)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물과 대기의 접점이라는 특이한 영역에 살고 있는 이 생물이 살아 남기 위해 갖추고 있는 남다른 능력 때문이다.
즉 물매암이는 등과 가슴에 각각 두 개씩 모두 네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등에 붙은 눈으로는 공중을 통해 접근해오는 적을, 가슴 쪽의 눈으로는 수중에서 다가오는 적을 감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잘 알다시피 빛이 물을 통과할 때는 굴절 현상을 일으킨다. 이 굴절의 각도 때문에 물 밖에서 물 속의 물고기를 보면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 반대로 물 속에서 밖을 본다면 작게 보일 것이다.
따라서 물과 공기의 접점에 사는 물매암이가 물과 공기 어느 한 쪽 밖에 제대로 볼 수 없고 그 때문에 다른 쪽에서 다가오는 적의 크기를 잘못 판단한다면 그것은 바로 물매암이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게 된다.
말하자면 상하 좌우 네 개의 눈은 물매암이의 생존을 위한 필수 장치인 셈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굴절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물매암이의 눈이야말로 글로벌 경쟁시대에 사는 우리가 지녀야 할 무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글을 사랑하는 몇몇 단체가 어느 은행과 통신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를 읽은 일이 있다. 회사 이름을 KB, KT등 영어 약자로 표기함으로서 불편과 정신적 타격을 주었다는 이유였다.
이 일이 아니라도 영어 약자 작명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 하다. 난해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외국인의 처지에서 본다면 알기 어려운 한글보다 영자 표기에 더 친근감을 가질듯 하다.
그리고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과 같은 세계화 추세 속에서 우리의 감정이나 입장만 내세울 수는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격해지는 반미 시위를 비롯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명분의 집단행동들을 지켜보면서도 물매암이를 떠올리게 된다.
신성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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