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벤처] 2. 미국의 코리아 벤처 열풍
교포 끌고 현지법인 밀고 '美대륙 질주'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있다' '나스닥 최첨단주의 폭락'
밖에서 미국 벤처에 대한 소식들은 이 같은 뉴스 일변도다. 뉴스로만 보면 한결같이 암울하고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이 때문에 미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곳 벤처기업들 역시 위기의식을 갖고 있으리라는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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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리콘 밸리의 분위기는 외부의 생각과는 판이하다.
우선 체감경기가 많은 차이가 난다. 출퇴근시간이 되면 주요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차고 식사시간이 되면 식당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먹어야 한다. 특히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탠포드대학 앞에 위치한 한 일식당에서는 저녁에만 영업을 하는데도 식사까지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벤처기업이 밀집해 있는 지역들의 집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부촌이라 할 수 있는 팔로알토(Palo Alto)시의 경우 방 두개짜리를 한달동안 전세값이 2,500달러(한화로 약300만원)에 달했고 최근 새로운 벤처 집적지역으로 부상한 버니지아주 폴스처치(Falls Church)나 뉴저지 뉴왁(Newark)공항 도로 주변 역시 집값이 3년전에 비해 2배이상 뛰었다.
이처럼 미국의 벤처기업들이 각종 지표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번창하고 있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관련산업이 불황에 접어들자 인터넷산업이 급속히 팽창했고 닷컴기업이 위기에 빠지자 이제는 이에 대한 기반시설과 관련장비산업이 뒤를 잇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백업망이라고 할 수 있는 광통신과 통신장비, 특히 무선 분야는 지난해부터 이곳 벤처들의 최대 화두로 부상했다.
그리고 그 한축을 한국인 벤처기업들이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벤처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교포는 대략 1,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특히 지난 97년말부터 시작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는 미국내 한인 벤처기업의 급격한 양적 성장을 몰고 왔다.
대기업과 연구소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기술ㆍ연구인력들이 대거 미국으로 와서 벤처기업을 창업했기 때문.
미국의 한인 벤처기업인들은 크게 두개의 범위로 나뉜다.
현지인들조차 '거물'로 평하는 이종문 앰벡스 벤처그룹회장(현재 한인상공회의소의장, 전 다이아몬드멀티미디어시스템즈 설립자)을 비롯, 김윤종 알카텔 벤처스사장(전 자일랜 사장), 이대범 실리콘이미지사장, 이일복 싸이프레스 세미컨덕트부사장(전 아이씨웍스 사장)등 '1세대'는 90년대 중반 창업해 한번 이상 회사를 매각한 경험이 있는 등 성공 벤처인의 반열에 올라가 있는 인물들.
현재는 자신이 매각한 회사의 경영에 참가하거나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2세대들은 90년대말부터 창업한 기업인들로 현재는 주로 무선 장비와 IT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대부인 시스코시스템즈로부터 1억5,500만달러에 회사를 매각한 주기현 엑시오커뮤니케이션즈사장을 비롯, 조셉구(한국명 구철회) 하프돔사장, 이기섭 GCT사장, 이계복 IBO사장, 다니엘김 아프로사장, 사이먼 리(한국명 이수동) STG회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이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은 한국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특징은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자본주의의 ABC라 할 수 있는 이것이 여기서는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박영일 KBI소장은 "벤처기업이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나 IPO(공개시장)에 갔을 때 창업자의 지분은 4~5% 안팎에 불과하다"며 "대신 외부에서 들어온 전문경영인(CEO)의 지분은 10% 정도"라고 설명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이들이 회사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회사가치를 키우는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M&A에 대한 거부감도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M&A를 반기고 있다.
"유명한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팔리거나 시스코와 같은 대기업에서 인수하는 것은 영광"이라는 윤승용 KTB네트워크 미주사무소장의 말에서 보듯이 이들에게 M&A는 기회의 창출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생존전략은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 또는 무서운 신인으로 대접받는 토대를 제공했다.
실제로 현재 실리콘이미지, 코리오, 디지털이미지등이 나스닥에 상장돼 2억~16억달러의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는 등 현지에서도 대표적인 벤처기업으로 부각했고 주기현 엑시오커뮤니케이션사장, 조요성 바이어게이트사장 등 시스코등 대기업에 1억달러 이상에 매각한 사례도 최근들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조요성 사장의 경우 현재 운영하고 있는 두회사중 하나를 조만간 대기업에 매각할 계획이 있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코리안벤처들의 활약은 교포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진출한 현지법인들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산호세시에 위치한 KSI. 미국 진출업체들이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이 인큐베이팅센터에는 12개 업체가 입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중 소프트온넷은 캐나다의 ASP솔루션 업체와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고 프리웹텔은 음성메시지 통합기술(UMS)을 개발해 현지업체와의 계약을 추진중이다. 이미 졸업한 LAS21은 자바 기반의 서치엔진 기술로 현재 LA에 진출, 사업기반을 넓히고 있다.
비록 깨지기는 했지만 얼마전에는 2,000만달러짜리 빅딜이 성사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박영일 소장의 설명이다.
지난 98년 실리콘밸리에서 버지니아주 폴스처치로 이주한 핸디소프트 현지법인도 미국의 IPO로 가기 위해 법무부등 미연방정부를 대상으로 활발한 수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데뷔 첫해 150만달러의 수주실적을 기록한 이회사는 올해 250만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으며 개발인력을 대거 영입하는 등 기반을 갖추고 현지 벤처캐피털의 투자유치도 준비하고 있다.
정종길 이사는 "미국에서 기반을 갖추기 위해 현지인을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2002년말까지는 IPO로 갈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코리안 벤처 기업인들은 교포가 앞에서 끌고 현지법인이 뒤에서 미는 마차처럼 미국대륙을 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속에서 새해 새로운 태양과 같은 또다른 한인스타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글로벌벤처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