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일] 스탈린그라드

동상으로 오른손이 썩은 병사는 왼팔로 수류탄을 던졌다. 건물 모퉁이에서 2개 독일 기갑사단을 막아낸 소대도 있었다. 전사자가 속출해도 소련군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노동자와 여자들까지 총을 들었으니까. 1942년 초겨울의 스탈린그라드는 처절했다. 슬라브인을 경멸했던 독일군은 “개가 사자처럼 싸운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시의 90%까지 내줬던 소련군은 겨울공세와 함께 전세를 뒤집었다. 독일 제6군의 후퇴요청에 대한 히틀러의 응답은 ‘현지 사수’. 죽음의 도시에서 빠져나갈 기회를 놓친 10만여 독일군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전투는 8개월 만에 끝났다. 1943년 2월2일의 일이다. 승리의 대가는 비쌌다.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고 100만명의 병사와 시민이 죽었다. 군수공장이 밀집된 거대산업단지이며 코카서스 유전지대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스탈린그라드를 탐낸 독일은 33만명의 훈련된 병력과 75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장비를 잃었다. 전투의 승패는 전쟁의 판세를 갈랐다. 연합국은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섰다.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서쪽으로 밀려났다.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이자 시가전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전술학 교과서에는 도시의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민관군이 단결할 때 압도적인 적도 퇴치 가능하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스탈린그라드의 시민과 병사들이 남긴 ‘조국에 대한 헌신, 불굴의 의지’라는 정신적 유산은 세계인의 공유물임에도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시대를 억압했던 ‘레드 콤플렉스’ 탓이다. 가리고 가려도 역사의 진실은 빛난다. 오늘날 볼고그라드로 이름이 바뀐 스탈린그라드의 볼가강에는 조국과 세계를 구했다는 러시아의 자긍심이 함께 흐른다. /권홍우ㆍ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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