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정치·경제적으로 위축돼 있었지만 핵협상 타결 때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물론 제재 해제로 경제적 이득까지 기대할 수 있게 돼 중동의 맹주 자리를 노릴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란의 오랜 숙적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중동국가들은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수니파 국가들 위주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이란에 맞설 군사동맹을 준비 중이며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위협을 내세우며 핵협상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과거 적대적 관계였던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1979년 이란혁명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이란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며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동맹국에 힘을 실어줬지만 이번 핵협상 타결과 함께 미국과 이란의 외교 정상화가 급물살을 타게 되면 기존 동맹국들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을 이란이 대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반증하듯 미국과 이란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기 위한 시리아 티크리트 공습작전을 함께 진행했다.
최근 예멘 정부를 전복시킨 시아파 후티 반군의 배후도 이란으로 지목되는 등 이란의 세력확대는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전문가들은 분위기를 탄 이란이 흩어진 시아파 세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다시 한 번 세 결집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이집트와 이라크·시리아 등 전통적 중동 강호들이 정치적 혼란과 내전 등으로 세력이 약화돼 이란에 더욱 힘이 쏠릴 수 있다"며 "경제 제재가 일부 해제돼 숨통이 트인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대표주자로서 예멘과 시리아의 시아파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미국을 믿지 못하게 된 수니파 국가들은 발 빠르게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사우디·이집트 등 수니파가 주도하는 아랍연맹은 지난달 29일 이집트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아랍연맹군'을 만들어 중동 지역 갈등에 개입하기로 했다. 이들은 또 예멘 시아파 반군을 소탕할 때까지 공습을 멈추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동안 예멘 사태에 소극적이었던 아랍연맹이 연합군 창설에 합의한 배경에는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함이 있다"고 풀이했다.
또 사우디가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자체 핵무기 보유를 추진하거나 필요하다면 아예 종교가 다른 이스라엘과 '예상 밖의 동맹'을 맺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란의 영향력 확대는 중동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의 계획된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6일 "군사개입 없이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의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며 "미국의 중동권 우방들은 이런 일련의 행동이 중동 문제에 더 이상 얽히지 않으려는 미국의 속내를 암시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