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불안·경기침체 2중고 이머징마켓 위기 고조세계 경제가 전반적인 침체 양상을 보이는 와중에 터진 미국의 초대형 테러 사건은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흥시장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전망된다.
호르스트 쾰러 IMF 총재는 이번 테러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다분히 금융시스템 복원에 초점이 맞춰진 언급으로 풀이되고 있을 뿐 세계 경제, 특히 이머징마켓은 상시적인 금융위기와 더불어 수출 부진 등으로 인한 성장 침체의 이중고(二重苦)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발(發) 경제 위기 가능성 고조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출렁였던 세계 금융 및 상품 시장은 곧바로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73년 중동전쟁(일명 욤키퍼 전쟁), 이란 혁명, 걸프전 후에 세계 경제는 곧바로 타격을 받았다는 전례를 감안하면 세계 경제 침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이스라엘과 아랍이 맞붙은 73년 중동전쟁 직후 그리고 이란 혁명과 걸프전 이후에 세계 GDP 성장률은 급전 직하했다.
물론 이 당시 세계 경제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치솟는 등 고유가의 피해를 많이 받았다는 점에서 미국 테러 사태 후의 세계 경제와는 다소 차별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소비심리 위축 및 이에 따른 소비지출 감소가 세계 각국의 GDP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주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세 차례의 중동 관련 사태가 벌어진 직후 미국의 소비심리는 40 수준으로까지 떨어졌으며 소비지출 역시 마이너스를 기록해 세계 GDP 성장률을 2% 안팎으로 끌어내렸다.
UCLA 앤더슨 스쿨은 12일(현지시간) 분기 경제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올 3ㆍ4분기 경제성장률은 1.1% 감소하고 한해 전체적으로도 1.0%의 저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내년 경제성장률 역시 0.8%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미국 경제성장률이 급격한 하락 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되는 주요인 중 하나는 바로 미국 GDP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소비지출 감소다.
이를 전제로 하면 세계 경제가 침체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는 그만큼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 신흥시장 위기 갈수록 증폭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이머징마켓에서 불거지고 있는 금융위기는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는 달리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투자가들이 과거와는 달리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으며 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핫머니 등 막대한 자금이 이미 이들 시장에서 이탈했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위기와 동반해 나타나고 있는 각국의 통화가치 하락은 이들 국가의 가격 경쟁력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부 낙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이머징마켓은 재정적자, 급격한 환율변동, 무역수지 적자, 부채 급증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국제 은행들은 최근 이머징마켓에 대한 대출한도를 줄이고 있으며 잇따른 신용등급 하향 조정으로 신흥시장 기업들의 자금조달 역시 경색되고 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중남미 경제 불안의 핵인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브라질ㆍ콜롬비아ㆍ페루ㆍ터키ㆍ인도네시아 등을 '위험한 국가'로 분류했는데 이들 국가들이 미국 테러 사건의 태풍에 좌초될 경우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 멕시코 등 견실한 신흥국도 비상
멕시코ㆍ싱가포르ㆍ홍콩 등은 그동안 이머징마켓 중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국가들로 꼽혀왔다. 그러나 미국의 초대형 테러 사건 이후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도 조만간 신흥시장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멕시코의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에 대한 수출입이 멕시코 전체 수출입의 9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대미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이번 테러 사건의 후유증이 장기화될 경우 멕시코 경제는 위축 단계를 넘어 마비 상태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경고한다.
안토니 렁캄충 홍콩 재무 장관은 "홍콩처럼 작고 개방된 경제 체제를 갖고 있는 국가는 미국 항공기 연쇄 테러 사건의 여파로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등 중단기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고 특히 최근 들어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는 IT 산업의 비중이 큰 한국ㆍ타이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은 테러 사건의 회오리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구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