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지구촌 베이비부머 수난시대] 편안한 노후 꿈꿔왔지만… 은퇴 후도 생활전선 내몰려

부모세대 수명 연장에<br>재산상속 기회 사라져<br>팍팍해진 노후 망연자실


'고생 없이 고성장의 과실만을 따 먹은 세대' '사회에서 많은 것을 얻기만 하고 부담은 젊은이들에게 떠넘긴 세대'.

경기불황과 재정난으로 안정된 일자리와 복지수혜의 기회를 잃은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바라보는 단카이 세대, 즉 일본판 베이비부머에 대한 인식이다. 전후의 가난에 시달린 70세 이상 고령자들이나 대학 졸업 후 50군데, 100군데 면접을 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와 비교할 때 안정된 경제성장을 향유한 670만명의 단카이 세대가 축복 받은 세대임은 틀림없다.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선진국들의 베이비부머 역시 마찬가지다. 서구의 베이비부머들 중에는 조기퇴직 후 연금과 상속 받은 재산만으로도 풍요로운 은퇴 생활이 가능하다고 보고 노후를 위한 저축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장밋빛 노후를 꿈꿔 온 선진국의 베이비부머들은 예상보다 너무도 팍팍해진 현실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부모 세대로부터 넉넉한 재산을 상속 받을 것을 기대하고 노후생활을 낙관해온 베이비부머들이 시장불안에 따른 자산가치 급락과 고령화에 따른 상속기회 상실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기 발발 전인 2007년 이후 2010년 사이 미국 가구의 평균 재산은 12만6,400달러에서 7만7,300달러로 약 40%가 급감했다. 금융자산을 굴리려고 해도 불과 5년 전까지 5.25%이던 미국 기준금리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0~0.25%로 떨어져 오는 2014년까지는 사실상의 '제로' 금리 상태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시장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관련기사



영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투자전문지 시티와이어는 유럽 재정위기 이후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영국 국채로 자금이 몰리면서 국채 수익률이 급락, 국채 투자 비중이 높은 은퇴자들의 연금수입이 급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말 정부 차입이 시작된 이래 최저 수준인 1.64%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유로존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고령화 진전으로 부모 세대의 노후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유산상속의 기회도 사라져가고 있다. 오히려 부모 세대가 급증하는 의료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져 60대의 베이비부머 자녀가 90대의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브린모우어의 홀리 이즈데일 유산 플래너는 "엄마아빠의 유산(Mom and Dad's estate)을 안정적인 은퇴생활을 위한 입장권으로 생각하는 어른 자녀들이 너무도 많지만 수명이 길어지면서 부모 세대는 자산 대부분이 소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에 소요될 자금은 점점 더 늘어나는 반면 노후자금의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던 주머니 하나가 사라져버리고 있는 것이다.

WSJ는 "85세 이상 고령인구 급증이 불안정한 금융시장과 초저금리, 의료 및 장기요양비 부담 증가와 맞물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가 이 모두를 감당할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인이 된 자녀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도 베이비부머의 몫이다. 뉴욕타임스는 조사업체 GfK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인용, 베이비부머의 절반 이상은 대학 졸업 후 독립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성인 자녀들을 받아주기로 했으며 93%가 대학 학자금이나 대출금 상환, 자동차 구매 등에 드는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도 30~40대의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부모와 동거하며 경제적으로 기대는 일명 '캥거루족'이 29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고용상태도 불안정해 실업률이 세대 전체 실업률(4.8%)의 2배가 넘는 11.5%에 달한다. 사실상 베이비부머인 부모 세대가 부양하고 있는 셈이다.

자산가치 감소와 끝나지 않은 자녀부양, 상속의 기회 박탈 등 3중고로 노년의 살림살이가 고달파지자 은퇴 연령이 지났는데 일손을 놓지 못하는 베이비부머도 늘어나는 추세다. 가디언은 고령자들이 새로운 은퇴 후 현실에 직면하자 연금을 지급 받을 수 있는 은퇴 연령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는 인구가 지난 20년 새 85%가량 증가했다고 전했다. 푸르덴셜의 은퇴 전문가인 빈스 스미스휴이는 "올해 은퇴를 계획했던 고령자 중 10% 이상이 연금 수급을 미루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신경립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