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승웅 휴먼칼럼] 병든 나라 병든 대통령

북금곰의 실태를 찍기 위해 극지역을 헤매던 3명의 TV촬영팀이 아직껏 폭설에 갖혀 있다.일본 NHK텔레비전의 프로듀서와 호주인 카메라맨, 그리고 러시아인 길잡이로 구성된 국제 3인조다. 이들의 조난 소식이 워싱턴 포스트 1면을 통해 소개된 것은 닷새전이지만 구조대가 돌아왔다는 속보가 없는 걸 보면 아직도 북극에 갇혀 있는 것이 틀림없다. 흔히 있을 법한 뉴스를 이 신문이 새삼 1면에 크게 다룬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북극권의 밤이 하루 21시간을 넘어 일행의 행방이 잡히지 않는데다 폭설과 강풍 영하 30도의 살인 추위가 겹쳐 사고발생국 러시아의 빈약한 구조장비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600마일 떨어진 미국 알래스카주 해안경비대의 지원을 받는 방법이 거론된 바 있으나 이번에는 러시아 정부측이 이를 대놓고 반대, 뉴스가 된 것이다. 러시아 땅에서 발생한 사고에 미국 장비를 동원한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대놓고 반대하기 때문이다. 인명이 아무리 중하지만 한 때 라이벌이었던 미국의 도움만은 사양하겠다는 러시아 고유의 자존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러시아가 보이는 갈등일 수 도 있다. 또 어찌보면 서서히 동사해가는 러시아의 경제사정을 반영하는 조난극일 수도 있다. 촬영대상도 하필이면 북극곰일까. 북극곰 러시아의 뒤틀린 심기가 흔연히 묻어나는 조난극이다. 지금의 러시아는 완전히 병들어 있다. 한때 반짝하던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마저 지금은 끊겨있다. 그렇다고 루블화만 무작정 더 찍어낼 수 없는 것이 지난 9월 37%까지 치솟은 인플레가 겁나기 때문이다. 한달 4달러(5,000원) 평균의 군인 봉급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군인가족 거개가 심한 영양실조에 빠져있다. 이런 군인수가 러시아 전체에 140만명이 된다. 브라질한테는 선뜻 400억달러를 쾌척한 IMF가 고작 80억달러의 추가지원을 호소한 러시아 한테는 냉담했다. 지금 그 일로 대통령 대행 프리마코프 총리는 이를 갈고 있다. 그나마 IMF의 대리권을 행사하는 미국을 통해 지원거부 통보를 받은만큼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셈이다. 러시아에는 알래스카 해안경비대의 출동을 코 웃음 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병든 것은 러시아 뿐이 아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역시 병이 나있다. 그의 병세를 전하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꽤 불길한 예감의 뉴스까지 서슴지 않는다. 『러시아 지도자가 흑해 연안에 갔다하면 그 지도자는 일단 정치적 무덤에 가까이 간 셈이다』는 섬뜩한 보도를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전하고 있다. 64년 흐루시초프가 흑해에서 휴가를 즐기다 숙청된 것이 그 첫 예다. 91년 고르바초프 역시 그 곳 별장에 머무르다 쿠데타를 맞은 뒤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곧바로 옐친에게 권좌를 넘겨줬고 이제 늙고 병든 옐친마저 모스크바 병원을 떠나 흑해로 장기요양을 떠났다는 얘기다. 글의 시사대로라면 옐친이 정치적무덤을 맞는 것은 시간문제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그의 불신임도가 사상 최고인 93%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병든 러시아 병든 옐친보다 더 무섭고 심각한 것이 있다. 러시아 도처에 산적해 있는 1,200톤의 고농축 우라늄과 150톤의 플루토늄이 그 것이다. 이중 절반은 무기에 장착돼 군시설물 안에 보관 중이라 크게 염려할 바는 아니나 언제고 무기전용이 가능한 나머지 650톤의 핵물질이 시차 시간대만 장장 11시간이 넘는 이 큰 대륙의 요소요소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심한 인력난으로 이런 핵물질의 도난이나 약탈을 감시할 인원을 확보하기 힘든데다 전력난까지 겹쳐 도난 또는 유실을 감시할 모니터용 카메라가 작동을 멈춘 채 꺼져 있다는 점이다. 몇 톤은 고사하고 우선 몇 백㎏만 손에 넣어도 핵폭탄 한 두개가 너끈해지는 것이 핵물질이다. 더구나 그 핵물질이 국가가 아닌 몇몇 테러리스트나 테러집단의 손에 들어갔을 때를 상정해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바로 이 상황을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정치역사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제일 우려해 왔다.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이 출간되고 3년이 지나 하버드 교정에서 그를 만났을 때도 헌팅턴은 그 대목을 수정할 보완책을 아직껏 찾지 못했다고 실토한 바 있다. 굶주림과 추위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목전의 빵과 핵물질이 물물교환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세계는 이번 러시아의 월동을 지켜봐야 한다. 그들이 만약 이삭을 줍거들랑 보릿단에서 빼내 흘려줄 것이지 타박해서는 절대 안된다. 김승웅/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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