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8월 21일] 국회의원 김대중

기자를 포함한 한국의 20대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통령, 혹은 대권주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야당 소속으로 6번(5ㆍ6ㆍ7ㆍ8ㆍ13ㆍ14대)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긴 필승(必勝)의 사나이다. 대선에서 4번이나 쓴 잔을 맛본 궤적과는 대조적이다. ‘김대중 의원’의 활약을 알기 위해 예전 신문을 들춰봤다. 그는 대변인ㆍ선전부장ㆍ정책위의장 등 총재가 되기 전 다양한 당직을 맡았다. 잘생기고 젊은 그는 시멘트 담합, 야당 축소 반대 등 새로운 이슈를 계속해 던진 정치인이었다. 야당 의원이지만 지역구에 예산을 많이 끌어오는 ‘능력’을 발휘해 여당 의원보다 인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돋보인 점은 그의 ‘입’이다. 흔히 정치인이 범하기 쉬운 실수가 감정적인 언어로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다. 그러나 신민당 대변인 시절 그는 차분하고 정연한 논리로 상대인 공화당을 압박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 등 귀에 박히는 명언도 남겼다. 지금의 야당에 비해 훨씬 열악한 유신시대를 살았지만 그는 지금보다 앞선 정치를 펼쳤다. 지난 1964년 본회의 석상에서 물 한 모금 없이 5시간19분 동안 원고 없는 연설을 하며 동료 의원의 구속을 막았다. 당시 구속 이유는 여당의 정치자금 의혹 폭로. 억울할 법도 하건만 그는 의회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장외투쟁이나 몸싸움을 택하지 않았다. 요즘 후배 의원들과 달리 의회주의를 지킨 점은 그를 6번이나 국민들이 선택하게 한 힘이었을 테다. 마지막으로 그의 한 마디를 되새겨본다. “나는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목표에는 확고부동하다. 그러나 방법은 평화적 태도와 인내ㆍ질서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 ‘국회의원 김대중’은 먼 길을 거쳐 다시 국회 앞마당으로 돌아왔다. 국민들의 바람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18대 국회의원들이 고인의 유지인 의회주의를 잇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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