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좋으라고 경기를 살립니까? 협조할 이유가 없어요."(민주통합당 A의원)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정작 칼자루를 쥔 국회에 발목이 잡혀 힘을 못쓰고 있다. 최근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취득세 감면대책에 대해 여야가 합의를 못하다가 그나마 18일 오후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다른 법안들은 여전히 처리 여부를 자신할 수 없다. 주택업계가 그나마 기대하던 분양가상한제 폐지나 재건축 초과이익부담금 유예는 국회 심의대상에서 아예 제외돼 오히려 시장의 실망감만 키우고 있다.
현 정부가 중장기적 발전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18대에 이어 19대 국회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자칫하다가는 주요 경기대응 입법 등이 여야의 외면 속에 이번 정기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까지도 점쳐진다.
◇부동산대책 오락가락=시장의 혼선이 가장 심각한 것은 부동산 거래세 감면 여부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지난 17일 행정안전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를 열어 취득세ㆍ양도소득세 한시감면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ㆍ여당이 추진 중인 취득세 감면을 논의하려던 기재위는 야당의 반대로 아예 회의조차 열리지 못했다. 취득세 감면에 따른 지방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법안 심의는 20일로 연기됐는데 18일 오전까지만 해도 자칫 정기국회 내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나올 정도였다. 그나마 당일 오후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뤘지만 경기활성화대책의 핵심인 부동산대책을 놓고 이렇게 오락가락해서야 다른 경기활성화대책도 어떻게 믿겠느냐는 게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처음부터 정부가 법 시행일을 최종 본회의 의결을 마친 후가 아니라 상임위 통과를 기준으로 발표한 것도 절차상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상임위를 통과해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헌 여부를 심사해야 하는데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애써 취득세ㆍ양도세 감면정책을 내놓기는 했어도 입법 과정과 적용시기로 인해 시장의 혼란만 부추긴 격이 됐다. 그나마 드문드문 있던 부동산 거래는 법안 통과시점까지 사실상 '공백'이 불가피하게 됐고 분양현장에서 오히려 계약자들의 혼선만 커졌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졸속원인 제공했다=고사위기에 처한 부동산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취득세ㆍ양도세 감면을 담은 '9ㆍ10대책'에 앞서 부동산대책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하지만 이때 내놓은 법안 중 국회에 여전히 계류하고 있는 게 많다. 다주택자 양도세 폐지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5ㆍ10대책' 발표를 통해 부동산시장 과열시에 도입됐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는 방안을 7월 말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를 2년간 유예하는 방안이나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도 야당의 반대로 올해 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해양위원회가 19일부터 이틀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심의할 법안을 확정했지만 심의대상에서 이들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결국 앞서 발표한 정책들이 시장에서 미처 시행되기도 전에 연거푸 추가 대책을 내놓다 보니 시장은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체감하기도 전에 새로운 정책에 놀라는 상황만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방대한 내용을 담은 주요 법안을 선거를 앞둔 회기 막바지에 제출해 충분히 심의할 수 없게 만든 경우도 있다. 정부가 제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그러하다. 449개의 법조문 중 190여개가 바뀌는 방대한 내용이지만 정부는 국회 일정을 무시하고 18대 국회 막바지에 법안을 제출했다. 당시 여야는 자본시장법이 금융시장 전반을 바꾸는 내용인데 급하게 처리했다가 미처 독소조항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다. 정부는 19대 국회에 다시 법안을 제출했지만 여야는 헤지펀드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히 논의하려면 내년으로 넘겨야 한다는 분위기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같은 맥락이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까지 나서 의료기관 민영화에 대한 논란을 해명했지만 야당은 여전히 의료기관을 민영화하려는 취지의 법안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역시 선거라는 변수에 휘둘려 자본시장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같은 중장기적 산업발전을 목표로 한 법안을 논의조차 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법안 처리시간 일주일 남았지만=여야는 3일부터 100여일간의 정기국회를 시작했지만 정작 민생법안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불과하다. 여야가 오는 11월27일부터 대통령선거 공식운동이 시작하는 점을 감안해 올해 정기국회를 예년보다 20여일 빠른 11월23일에 마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민생법안만 처리해도 빠듯한 일정은 아랑곳없이 여야는 대선 전초전을 치르는 중이다. 각 상임위가 이번주부터 본격 가동됐지만 법안 논의 순서를 정하는 일부터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상대방이 주도하는 법안 처리에 협조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게 여야의 속내다.
이달 말 추석이 지나면 다음달 5일부터 24일까지는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다. 이후 마지막 본회의까지 3주일이 비지만 2주 이상은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하기에도 빠듯하다는 게 여야의 공통된 반응이다. 여야는 27일을 비롯해 다음달 4일, 11월1ㆍ22ㆍ23일 본회의에서 안건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안은 11월22~23일 본회의에서 예산안과 함께 졸속 처리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여야 간 대선공약 중 비슷한 내용이나 정부 제출 법안 일부만 국감이 끝난 뒤 심의해 의결하고 나머지는 내년으로 넘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