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총선을 앞둔 그리스의 정치적 혼란과 불투명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미래는 뉴욕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큰 이슈다. 월가의 딜러, 트레이더들은 대서양 건너 유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내로라하는 미국의 이코노미스트들도 저마다 그리스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과 조셉 스티글리치 교수는 그리스에 가해진 엄격한 긴축은 경기침체만 가중시킬 뿐, 재정균형 회복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 주장한다.
닥터 둠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한술 더 떠 "이혼은 가슴 아프지만 가망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것보다 낫다"며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경쟁력을 회복해 한결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재정적자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월가 인사들을 접촉하다 보면 종종 한국에 대한 칭찬을 듣게 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고 긴축조치를 취했고, 국민들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며 위기를 맞아 정부와 국민이 단결했던 한국을 높이 평가했다. 이와 함께 "그리스에는 현대차, 삼성전자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고 자국 통화를 도입해 평가절하를 단행하더라도 급속한 산업경쟁력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한국 제조업의 뛰어난 경쟁력을 위기 극복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 등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위기 수습에 직접 활약했던 월리엄 로스 씨티그룹 고문은 "한국 국민들이 보여준 금 모으기는 평생 잊을 수 없다"며 "국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하겠다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도 큰 영광"이라고 한국을 치켜세웠다.
한국에 대한 칭찬을 듣노라면 기자도 우쭐해진다. 그것도 외환위기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을 이리저리 요리했던 월가 인사들의 시각이 10여년 만에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칭찬을 들을 때면 한국이 IMF로부터 200억달러를 지원 받으면서 약속했던 가혹한 조건들이 떠오른다. 당시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30대 그룹의 절반이 날아갔다. 또 수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길바닥으로 내쫓겼다. 은행, 빌딩 등 알토란 같은 자산들은 헐값에 외국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후일 IMF가 인정했듯 한국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비해 엄청나게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이미 국제사회로부터 3,800억유로를 지원 받았으면서도 배짱 좋게 드러눕는 그리스와 이를 어떻게 하지 못해 절절 매는 유럽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힌다. 월가 인사들의 한국에 대한 칭찬이 씁쓸하게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