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33)씨는 동거녀를 3차례에 걸쳐 폭행하고 술집에서 만난 다른 여성을 강간해 상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해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 받았다. 이유는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고 나이, 경력 등을 참작할 때 1심 형량이 다소 무거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최근 법원이 항소심에서 형량을 깎아주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이에 본보가 서울고등법원에서 2월 한 달간 내려진 선고 100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총 53건이 항소를 기각했으며 47건이 1심을 파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각 건 중 25건은 1심의 유죄인정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형이 너무 무겁다’며 감형한 것으로 분석됐다. ◇ 감형이유 '천태만상' 감형의 주된 사유는 ▦초범 여부 ▦피해자와의 합의 ▦반성 ▦심신미약 ▦연령, 범행동기ㆍ수단 등이었다. 살인ㆍ성폭력 등 강력범죄의 경우에도 범인이 ‘술에 취해 있었던’ 심신미약의 상태를 인정해 감형해 주기도 했다. 가정주부 박모(36)씨는 평소 시아버지와 잦은 말다툼 끝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식칼로 시아버지를 찔러 살해했다. 박씨의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형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에서는 “만취한 상태 이뤄진 우발적 범행이고 출산한지 얼마 안된다”는 등의 이유로 3년6개월로 감형해줬다. 또 화이트칼라 범죄, 선거사범에 대해서도 초범, 피해액 회복 가능성 등의 이유로 감형해주는 사례가 여럿 있었다. 서울시내 한 구청장의 경우 1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가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벌금 70만원으로 ‘선처’를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부금액이 크긴 하지만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며 당선유지 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은행 대출담당 부서 직원인 강모(34)씨는 대출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돈을 빼돌린 뒤 주식거래로 수십억원을 날려 업무상 배임, 서명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개인적으로 돈을 은닉하지는 않은데다가 회사에서 들어둔 보험으로 피해금액에 대한 보상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할 때 1심의 형은 너무 무겁다”며 징역 2년으로 낮춰 판결했다. ◇ "이유없는 항소에 불이익"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법원에서 피고인이 항소를 하면 온정주의적으로 양형을 일부 깎아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때문에 피고인들 사이에서 무조건 항소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털어놨다. 서울고등법원 서기석부장판사는 “조만간 양형실무위원회를 열어 항소심 재판에서 가급적이면 1심의 양형을 존중해주도록 하자는 논의할 예정”이라며 “특히 법리나 사실을 다투는 게 아니라 감형을 받기 위해 항소하는 경우, 구속일을 형에 산입해주는 관행을 줄이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