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폭발'이다. 빛나는 분출이다. 축구는 축구일 터인데 무엇 때문에 이 같은 하나됨이 이뤄지고 어디에서 그 거창한 힘이 솟는 것일까.4700만 국민의 자발적인 통합과 응집력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아니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남녀노소 사회 각계층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벽을 허물고 우리가 이처럼 하나가 된 것이 정말 얼마 만인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왜쳐본지 얼마 만인가.
태극기 물결을 일으켰던 적이 언제 였던가.'광복 함성''민주의 함성'에 결코 뒤지지 않을 울림이다. 이념도 정치색도 없이 전국민이 이처럼 일체감을 회복하고 통합된 에너지를 폭발시킨 적은 없었다. 한국팀의 16강 진출은 값지다.
그에 못지 않은 결실은 일체감 응집력 자신감, 그리고 잠자던 애국심의 깨움이다.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는 잠재력이다. 한국, 한국인이 자랑스럽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사는 우리는 스스로를 내세우기보다 안으로 갈무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의 눈엔 조용한 은둔의 나라, 행동할 줄 모르는 선비로 비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불타는 내심을 분출할 줄도 안다. 예부터 우리 국민들은 축제 때나 외침 등 국가적인 일이 생기면 '점잔'을 떨쳐고 일어섰고 뭉쳤다.
응어리를 토해냈다. 이것이 한국인의 특질이다. 반만년 의연히 지켜온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이번 월드컵축구에서 전국민이 하나가 된 붉은 응원은 이 같은 우리의 참모습을 되찾게 해주었다.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었다. 월드컵이란 '세계인의 축제'한 마당이 오랫동안 몸 속에서 잠자고 있던 우리의 참모습을 깨우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고,우리는 눈을 떴다. 폭발하나 절제된 흥분, 일탈하지 않는 성숙된 의식을 내보였다.
한국축구의 혁신, 그리고 수준 높은 정보기술(IT)도 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붉은 응원을 통해 분출된 다이나믹한 에너지는 외국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정열적으로 응원하면서도 질서를 지키는 냉정하고 차분한 파도는 한국의 브랜드로까지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폭력과 난동으로 얼룩진 훌리건과는 바탕이 다르다. 상대국팀도 격려하는 성숙한 모습은 동방예의지국 다웠다.
이는 한국의 이미지 개선과 국가신인도 제고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가 11조원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이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정체성의 응집력과 자신감, 분출하는 에너지는 경쟁력 향상과 국가발전의 동력이다. 이를 일회성으로 흘려버리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하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다. 이미 탄탄한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한 바탕의 흥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신바람을 일으키는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 월드컵의 화려한 잔칫상은 유럽과 남미 중심의 우승국들 차지였다. 월드컵 도중에 이처럼 국민이 하나가 되고 뜨거워진 예는 없었다. 이 때문에 월드컵이 끝난 뒤 국민들이 허탈감에 빠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행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는 비아냥을 들을까 걱정도 된다.
지금 우리는 정치권의 혼란 속에서 불안해 하고 있다. 사회적 갈등과 불신의 벽도 높다.
경제도 회복기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불확실성에 쌓여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요구되는 것이 국민들의 일체감과 자신감이다. 붉은 물결이 보여준 통합력이라면 못해낼 것도 없다.
에너지는 충분하다. 이것이 각분야의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월드컵의 에너지를 국가발전으로 승화시켜 또 하나의 신명나는 축제를 마련하자. 그러기 위해 더 웃고 더 목청을 높이고 춤에 힘을 더해 오늘의 응어리와 불신, 스트레스를 토해냈으면 한다.
이병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