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韓中日 바둑영웅전] 아픈 만큼 성숙한다

제8보(172~197)

[韓中日 바둑영웅전] 아픈 만큼 성숙한다 제8보(172~197) 좌변을 모조리 흑이 차지하면 흑이 이 바둑을 이기게 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다. 공상과 같은 하나의 그림일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흑93으로 끊고 다시 97로 끊어서 좌변의 광활한 지역이 모두 다 흑집이 되어 버렸다. 무려 1백집, 아니 1백7집이다. 우변의 흑대마는 물론 잡혔다. 하지만 그곳은 50집이 채 되지 않는 크기. 우상귀와 우하귀를 모두 합쳐도 백은 1백집이 되지 않는다. 계가를 마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손끝과 입으로만 하는 복기가 한참 이어졌다. 10분쯤 지나자 조훈현이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에이구우. 고생이 많았네에.” 최철한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피곤을 토로한 말이었다. 조훈현은 어딘가로 총총히 가버렸고 최철한은 한국기원 1층의 스튜디오를 나와 4층의 편집실로 올라왔다. 이성구 편집장의 특별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철한아, 미안하지만 오늘 바둑 해설 좀 해줄 수 있겠니? 조국수가 너무 바빠서 못 해 준다는구나.” 최철한은 사양하지 않고 선선히 해설을 해주었다. 해설을 구경하던 시인 박해진이 그날 저녁에 한 말이 있다. “진 바둑을 선선히 해설해 주는 철한이의 심성이 아주 보기 좋았다. 얘가 아마 머잖아 대형 사고를 칠 것이다.” 해설을 듣고 나서 필자는 최철한을 위로했다. “누군가 말했지.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최철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그래도 이겼더라면 더 좋았을 거예요. 그는 이 말을 삼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97수이하줄임 흑18집반승. /노승일ㆍ바둑평론가 입력시간 : 2004-10-0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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