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리뷰) 연극 ‘3월의 눈’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 백성희, 장민호에 대한 헌정작…사라져가는 인생사 담담하게 풀어내

겨울이 훌쩍 지나가버린 3월에 내리는 눈(雪)은 ‘찰나의 눈’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하얀 눈은 환상 속에서 피어나듯 지상의 번민과 고통을 감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검은 땅을 덮었던 눈은 봄의 기세에 눌려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어느새 일상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용히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우리네 덧없는 인생사를 웅변하는 듯 하다. 최고령 배우 장민호(87), 백성희(86)의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극장’의 개관작이자 두 원로배우에 대한 헌정작으로 선보인 연극 ‘3월의 눈(연출 손진책)’은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한옥마을에 자리한 쓸쓸한 분위기의 고택(古宅) 한옥이 배경이다. 몇 년 전부터 관광지로 변신한 한옥마을에선 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카페와 상점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한옥이 운치 있게 자리 잡은 관광지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옷 가게들로 넘쳐나는 삼청동의 한 귀퉁이를 만나는 듯 익숙한 광경이다. 집 주인인 80대 중반의 장오 노인은 하루 빨리 이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 하나 밖에 없는 손자를 위해 마지막 남은 재산인 한옥을 팔아 버린 것이다. 새 주인은 고목재상을 데려와 쓸 만한 문짝과 마루 등의 목재를 떼어 간다. 집은 하나, 둘씩 제 살점을 내어주고 마지막엔 앙상한 뼈대만 남는다. 이제는 떠나야 할 집에서 장오와 그의 아내 이순(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은 겨울을 난 문 창호지를 새로 바른다. 입으로 물을 뿜어 기존의 창호지를 발라낸 뒤 그 위에 새 창호지를 바른다. 무대 위에선 장오 노인과 이순 할머니의 살아온 인생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극의 흐름은 요즘 연극에선 보기 드물게 느리고 노부부의 대사와 움직임은 어느 순간 툭툭 끊기고 어느새 일상의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나 묵직하게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잊고 지냈던 그때 그 시절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 장민호, 백성희 씨는 50년 이상을 신협(국립극단의 전속극단)과 국립극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왔으며 1960년대에 최초로 부부 연기를 한 후 수많은 작품에서 연기 호흡을 맞춰 온 연기 동료다. 공연은 오는 20일까지 서계동 국립극장내 백성희장민호극장. (02) 3279-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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