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한미원자력협정, 이념·정치에 갇혀선 안된다


[시론]한미원자력협정,이념·정치에 갇혀선 안 된다

조성경·명지대학교 교수


농축·재처리 경제성·비용 분석 선행을

국민에 설명하고 들어야 진짜 힘 생겨

신문방송에서 건강을 위해 규칙적 운동이 필수라 한다. 그래서 장만한 런닝머신, 생각 못한 문제가 한 가득이다. 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한두 달 뛰다보니 답답하다. 시끄럽다고 민원도 들어온다. 어린 조카가 놀러왔다 발이 끼는 사고도 한 번. 음식냄새 밴 웃옷을 걸어놓는 것 말고는 활용도가 높지 않다. 치울 수도 없고 난감하다.


‘한미원자력협력협정 협상이 상당히 진전됐다.’ 지난 10월 말 워싱턴발 한미 양국 외교장관의 일성이다. 1973년 체결돼 2014년 3월 만료 예정이었던 한미원자력협정, 지난해 4월 기간을 2년 연장하고 타결을 위해 세부 조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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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협정의 출발점은 핵비확산에 대한 동의다. 미국은 원자력법과 핵비확산법에 근거해, 자국이 공급한 핵물질에 대한 협정상 안전조치, IAEA에 의한 안전조치, 평화적 이용과 민감기술 이전 보증, 반환청구권, 물리적 방호, 재이전, 농축/재처리, 형상·내용 변경, 저장 동의권 등 9개 조건을 협정에 명시토록 하고 있다.

정부는 2010년 협상을 시작하면서 사용후핵연료 처리, 원전연료 공급, 원전수출 경쟁력 문제를 내세웠다. 최근엔 선진적·호혜적 신협정 마련을 목표로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노력이 이념프레임이나 정치적 논란에 갇히지 않으려면 챙겨야할 몇 가지가 있다.

협상은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을 얻는 과정이 아니다. 덜 중요한 것을 주고 더 중요한 것을 받는 게 협상이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에너지안보다.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과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가 필수다. 농축우라늄을 적기에 공급받고, 안전하게 사용후핵연료를 저장, 운반, 처분할 수 있는 기술을 공유하고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처리의 경우 연구개발의 협력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원전수출의 제한성을 지우는 것도 숙제 중 하나다. 대신 우리는 협정을 통해 핵비확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혹자는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갖지 않으면 협상 실패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원전안전에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농축이나 재처리시설을 원전이상의 위험시설로 인식한다. 경제성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 분석이 선행돼야 할 이유다. 물론 국민의 공감을 바탕으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순서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게 들여놓고 애물단지로 만든 런닝머신꼴이 될 수 있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골드스탠다드 즉 농축과 재처리 포기선언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비정상적 요구를 차단하면서 핵비확산 차원의 법적 동의권과 우리의 실질적 수요를 조화시켜야 한다. 또한 원전을 둘러싼 국내외 환경변화가 있을 때 원자력협정에 대해 긴급히 재논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실리도 중요하지만 명분도 포기해선 안 된다. 권한을 찾아 회복하는 것, 즉 미국이 우리에게 공급한 부품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미국에 수출한 주요 부품에 대해 대한민국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은 협상의 창으로 자국 내 원자력법과 핵비확산법을 앞세운다. 의회 심의절차라는 방패도 갖고 있다. 대한민국도 국격에 맞게 국내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협상에서 대한민국의 법과 국회가 힘이 될 수 있다. 한미원자력협정 협상 막바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국민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설명하고 또 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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