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라잔 "돈풀기 신흥국에 해악" vs 버냉키 "환율개입에 효과 반감"

연준 통화정책 놓고 거친 설전

신흥국 폭발직전 불만 재확인

취약한 글로벌공조 균열 우려

10일(현지시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주최로 워싱턴DC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을 강력 비난한 라구람 라잔(연단 오른쪽) 인도중앙은행 총재에게 청중석에 앉아 있던 벤 버냉키(오른쪽) 전 연준 의장이 질문자로 나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제공=브루킹스연구소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초완화 기조가 미국 경제에 준 이익보다 나머지 나라가 받은 해악이 더 큰데도 그런 통화정책을 유지해야 하는가."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RBI) 총재)

"양적완화 정책은 글로벌 경제의 총수요를 늘려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는데도 신흥국의 환율개입 때문에 효과가 반감됐다."(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선진국과 신흥국을 대표해 두 중앙은행 거물이 맞붙었다. 험악한 설전을 주고받은 곳도 글로벌 공조 모색을 위한 자리였다. 10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미 워싱턴DC에서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리고 11~12일에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 총회가 개최된다.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신흥국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 이르렀다는 사실이 또 한 번 확인되면서 가뜩이나 취약한 글로벌 공조체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날 라구람 라잔 총재는 브루킹스연구소 주최의 토론회에 참석해 장장 20여분에 걸쳐 "연준 등 선진국의 천문학적인 돈 풀기가 신흥국 경제와 국제협력을 위협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양적완화로 외국인 자금이 떼거리처럼 몰려오더니 이번에는 선진국 금리상승에 거꾸로 대규모로 탈출하면서 신흥국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라잔 총재는 7일 영국 더타임스와의 회견에서도 "선진국의 극단적인 통화정책 탓에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신흥국 중앙은행 총재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연준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신흥국이 배운 교훈은 환율시장에 개입해 경상적자를 줄이고 외환보유액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의 게임 규칙이 고장 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라잔 총재는 "연준은 자신의 통화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나 국제공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연준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은 한때 제 역할을 했지만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이제는 효과도 명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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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양적완화 정책을 주도한 벤 버냉키 전 의장은 발끈했다. 브루킹스연구소 특별 연구원 신분인 그는 이날 양복도 입지 않고 편안한 복장으로 토론자도 아닌 청중으로 참석했다가 첫 질문 기회를 얻어 조목조목 반격에 나섰다. 그는 "연준 인사들은 매년 8~10차례 신흥국 중앙은행 관계자들과 만나는 등 통화정책 공조에 대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버냉키 의장은 "라잔 총재의 발언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반영하는 데 불과하다"며 "환율시장 개입과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동등하게 평가했지만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적완화는 총수요를 창출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환율개입은 되레 통화공급 효과를 감소시킨다"며 "라잔 총재도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했다면 경제가 더 나아지면서 다른 시각을 갖게 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토론자였던 빅토르 콘스탄치오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도 "과거 부분적인 글로벌 공조 실패는 선진국의 통화완화 때 신흥국이 환율절상 압력에 저항했기 때문"이라며 라잔 총재에 역공을 가했다. 그는 "신흥국은 거의 완전고용에 가깝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등 선진국은 높은 실업률, 저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수요 확대 정책을 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 자리에 있던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연준은 통화정책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있지만 최우선 목표는 미 경제개선"이라고 반박했다.

당초 미국의 우려대로 연준의 통화정책이 이번 G20회의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셈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 7일 이번 회의를 앞두고 중국의 환율시장 개입, 유럽과 일본의 경기부양책 등을 비판했는데 테이퍼링 우려를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더구나 중국의 위안화 약세에 대한 공격도 거의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일본·유로존·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선진국도 통화약세를 유도하는 판에 유독 중국만 걸고 넘어지는 게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날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달 중국의 위안화 변동폭 확대는 통화약세 유도가 아니라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것"이라며 "이는 세계 경제 성장과 리밸런싱(재균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IMF가 미국보다 중국의 환율정책을 옹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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