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심리가 살아야 경제가 산다

소비자들의 지갑은 꽁꽁 닫혀있고,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에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소비, 투자와 수출이라는 세바퀴가 조화롭게 돌아가야만 경제가 견실하게 성장하기 마련이지만, 현재 우리경제는 수출이라는 바퀴 하나만으로 겨우 세발자전거를 굴리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나서서 각종 처방전으로 경기를 회복시켜보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전에는 효과를 볼만한 처방도 그 약발이 영 먹히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들어 심리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경제주체들의 심리 변화가 경기를 변동시키는 주요인이라는 경제학자 피구(A. C. Pigou)의 주장이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경제는 과거에는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아 실물경제가 나빠지면 그제서야 경제심리가 위축되는 게 대부분이었고, 고도성장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불안심리가 급격히 확산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IMF위기라는 심리 공황을 겪으면서 항상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잠재적인 불안감이 조성되어 조그만 충격에도 소비자와 기업들이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경제심리지수가 예전에 비해 훨씬 크게 변동하고 있다. 덧붙여 최근 신용불량자 문제는 심리불안의 도화선이 되었다. 지난해 정부가 카드 사용 등 소비과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경기연착륙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결과 신용불량자수가 급증하면서 실제 소비여력이 있는 중산층조차도 이러한 사태를 위기로 인식하는 집단 최면상태에 빠진 것이다. 기업 투자 역시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출확대가 투자로 연결되던 고도성장기와 달리 IMF위기 이후 기업은 안정위주의 경영에 주력해왔다. 이러한 경영전략이 최근 소비심리 위축이라는 경제상황과 맞물리면서 투자의욕 또한 꺾여버렸다. 얼마전 상공회의소 조사에서 실제 투자를 적게 하는 이유로 절반 이상의 업체가 경기부진과 안정경영을 꼽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도 여전히 내수가 부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미국 등 세계경제가 회복되더라도 경제심리가 안정되지 않으면 과거 90년대 일본이 겪었던 침체의 늪에 우리도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것 같다. 91년 버블붕괴후 사회적 불안심리로 디플레 악순환에 빠졌던 일본의 경우 초기 정책대응에 실기하면서 뒤늦게 9차례에 걸쳐 124조엔 규모의 막대한 경기부양책을 시도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버블붕괴 그 자체보다는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는 일본 국민들의 심리 공황이 바로 장기불황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경험은 경기침체의 악순환 고리를 단절시키기 위한 심리안정화정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그때 그때 땜질처방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에 대한 강한 의지와 청사진을 효과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우리경제가 IMF위기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형 악순환의 초기고리를 끊고,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안정을 통해 투자와 소비를 확대시키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소비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미래 불안감을 없애주어 소비자가 자신의 능력 내에서 지갑을 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투자를 대폭 확대하지 않으면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힘들 것 같다. 투자가 이루어져야만 일자리가 창출되어 건실한 소비주체들이 늘어나고, 4-5% 수준인 잠재성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성장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북돋워주는 일이다. 지난 80년대 국민소득 2만달러로 성장할 때 설비투자가 연평균 9%정도 증가세를 보인 일본이 지금은 장기간 설비투자 침체로 잠재성장률 0%대에 머물러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투자를 경기회복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어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떨치기 어렵다. 정부는 근본적인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말로만 기업대책을 내세우기 보다는 행동으로 시장경제질서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곳곳에 퍼져있는 반기업적 정책기조와 사회분위기를 일소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대의 경영애로이자 외자유치 걸림돌인 노동경직성과 불법파업 등 고질적인 노동관행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또 투자가 자발성과 자기책임 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하고, 이러한 정책들이 부처간 마찰 등의 혼선 없이 일관성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기업과 국민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심리처방전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하명근(서울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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