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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창]시장은 왜 테이퍼링을 두려워 하나

매튜 서덜랜드 피델리티 주식투자부문 아시아 지역 총괄


파티에서 술이 떨어지는 것보다 흥이 깨지는 일은 없다.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에 펀치볼(음료를 담아내는 그릇)을 치워버리면 손님들이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시장에서는 이처럼 국내총생산(GDP) 증가, 인플레이션, 일자리 창출이라는 형태의 경제파티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에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양적완화'라는 펀치볼을 치워버릴까 우려하고 있다.

만일 견조한 성장, 인플레이션, 높은 일자리 창출이 나타나는 등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면 시장의 우려는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 세 가지 조건 중 경제성장만이 나타나고 있고 그마저도 금융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 특히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실업률 통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기술혁신으로 인해 많은 일자리들이 로봇과 컴퓨터 차지가 됐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래 미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공급량 확대를 통해 펀치볼을 제공하고 있다. 통화공급 확대정책이 없었다면 상황이 얼마나 악화됐을지는 짐작할 수도 없다는 측면에서 이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전 세계가 양적 완화에 중독돼버린 상황에서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언제 어떻게 이것을 중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통화공급 증가로 유입된 자금들은 수익을 좇아 움직이면서 자산가격의 인플레이션은 가속화시켰지만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2.5%를 밑도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스페인 등 일부 국가에서는 뚜렷한 디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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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의 원인은 디레버리징이다. 정부·기업·소비자 모두 2008년 금융위기로 충격을 받았고 위기를 초래한 주된 원인이 과도한 레버리지였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번 돈을 지출하지 않고 저축하거나 투자한다는 점에서 디레버리징은 디플레이션 효과가 크다. 그 결과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통화유통속도도 급락하게 된다. 중앙은행이 발권하는 돈이 대부분 저축되거나 장기자산에 투자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산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지수는 상승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미 연준과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를 종료하기 전에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을 통해 임금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디레버리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증거가 나타나면서 소비자가 다시 지갑을 열고 기업의 설비투자 의사가 다시 높아지고 정부가 재정긴축 전략을 중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증거들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미 연준은 통화정책이 제때 종료되지 못하면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 조기부터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미 연준이 경기회복을 지나치게 낙관해 이제 겨우 나아지고 있는 글로벌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시장이 테이퍼링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당분간 글로벌 증시는 재닛 옐런 의장의 발언에 따라 마음을 졸이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 상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도 글로벌 경제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미국의 테이퍼링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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