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거든 화장을 해 4평짜리 납골당에 묻어주시오, 나는 그걸로 만족하오.” 지난달 21일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난 박경재(향년 74세) 송원산업㈜ 회장. 박 회장은 ‘살아생전 사회와 회사 직원들의 도움으로 성공한 만큼 빈손으로 떠나겠다’는 평소 지론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냈다. 박 회장의 유족과 회사 임직원들은 박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4일 충남 천안의 모 납골당에 박 회장의 유골을 안치하는 행사를 끝으로 조용히 장례식 절차를 마무리했다. 회사 임직원들은 이날 유족들로부터 ‘빈손으로 가겠다’는 박 회장의 유지를 전해듣고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절함에 그리움의 눈물을 쏟아야 했다. 울산에 본사를 둔 송원산업은 산화방지제 및 합성수지 첨가물 생산의 세계적 기업으로 증권거래소에 주식이 상장된 중견기업. 지난해 매출 2,300억원을 달성한 데 이어 산화방지제 증산을 위한 제2공장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어 조만간 관련 업계 중 세계 1위 등극이 유력한 회사다. 개인재산만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박 회장이 회사와 사회를 위해 모든 걸 남긴 채 연고도 없는 천안의 ‘4평짜리 납골당’에 묻혔다는 소식을 접한 울산시민들은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박 회장이 몸소 실천한 것이라며 숙연함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 회장이 암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 국내와 일본ㆍ미국을 오가며 지리한 암과의 사투를 시작하면서도 박 회장은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열사를 위해 당시 시가로 110억원대의 개인자산을 무상으로 선뜻 내놓았다. 박 회장은 송원산업 계열사인 울산시 남구 여천동 송원페라이트㈜의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개인소유 부동산 592평을 무상으로 내놓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외부에는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컴퓨터 모니터 및 TV 브라운관 부품 중 자성재료 일종인 페라이트(Ferrite)를 생산하는 이 계열사는 박 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위기를 딛고 지금은 매출 수백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사회복지나 공헌활동이 생소하던 80년대 초부터 해마다 사재 2억원을 털어 회사에 내놓았다. 직원들의 복지기금으로 사용하라는 주문이었다. 박 회장은 타계하기 직전인 올 초까지 꼬박꼬박 이 기금을 개인 돈으로 충당해 지금은 기금이 30억원이나 모였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박 회장의 진정한 기업가 정신은 암투병 중 사망선고를 받은 후에도 계속됐다. 박 회장은 ‘방사선 항암치료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의료진의 권유를 기어코 뿌리쳤다고 한다. 박 회장은 “어차피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건강한 기업가가 회사 경영을 전담하는 것이 옳다”며 스스로 생명연장 기회를 접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유족들에게 “남은 재산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에 써달라” “회사장으로 장례를 치르더라도 비용 일체를 회사에 짐 지우지 마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송원산업의 실질적 오너인 박 회장이 타계했지만 그의 유지를 받들어 당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진양 출신인 박 회장은 일본에서 대학을 마친 뒤 ㈜럭키에 입사, 65년 송원산업을 설립한 뒤 세계 굴지의 정밀화학업체로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