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관치의 담장 위에 선' 금융당국

'신한사태' 나서자니 KB 전철 우려… 방관하자니 시장이 걱정…<br>개입 수위 놓고 고심 또 고심… '우회관여' 나섰지만 말은 아껴<br>금융회사 경영진 임기 제한등 '언론 통해 공론화' 속내 비쳐

KB지주 사태를 겪으면서 금융당국은 관치(官治)의 거센 후폭풍과 맞서야 했다. 진실을 떠나 시장은 KB 사태의 뒤에 당국이 있다고 판단했고 1년여의 준비 끝에 어렵사리 만든 사외이사 개편방안 역시 관치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태가 갈무리될 즈음 한 고위 당국자는 "KB 사태는 과거와 달라진 정책 수행의 환경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과거와 같은 투박한 관치의 방법으로는 시장을 이끌 수 없으며 정교한 관치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고 되돌아보았다. 1년도 안 돼 터진 신한금융지주 사태. 금융당국이 다시 한번 '관치의 담장' 위에 섰다. 금융당국은 신한 사태의 개입 수위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고위 당국자는 "신한 사태는 KB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예민한 문제다. KB 사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섣불리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경영진 임기 등 지배구조 문제는 차제에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회적 개입 나선 당국…명분은 '신한의 정체성'=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신한은행은 특정 주주나 경영인의 것만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조흥은행ㆍLG카드 인수 등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신한의 성장에는 공공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밝힌 '공공(公共)'이라는 말은 신한 사태가 단순히 민간 회사의 경영권 분쟁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할 명분과 필요성을 에둘러 얘기한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금융회사인 신한의 명운을 경영진의 사리사욕에 따라 좌우되도록 놓아둘 수는 없으며 더욱이 국가적 대사인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우리 금융산업의 후진성을 드러내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공공성이라는 신한의 정체성을 명분으로 우회적 개입에 나선 셈이다. ◇포문 연 책임론…경계선에 선 관치의 발=진 위원장은 이날 "사태 발생에 대해 관계자는 다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 사태 후 처음 '구두 개입'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자신이 밝힌 책임론만 갖고도 시장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한 발만 더 나아가도 당장 관치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당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또 하나는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이 신한금융지주에 대한 사외이사 파견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물론 BNP파리바에 이어 신한금융지주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사외이사를 파견하는 것은 논리상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상 정부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국민연금이 현 시점에서 이런 입장을 내놓은 것은 관치를 피하면서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그렇다고 이를 놓고 '관선 이사 파견' 등으로 비쳐지는 것에는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다. 한 당국자는 "KB 사태로 관치의 홍역을 앓은 터에 관선 이사 등은 불가능하며 이는 그야말로 최후의 카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가의 한 고위 임원은 "금융당국의 현 모습을 굳이 표현하면 '관치의 발이 교도소 담장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촌평했다. ◇경영진 임기제한 등도 시장 통해 공론화 바라=관치의 선상에 서 있는 정부의 모습은 지배구조의 수술 방안에도 묻어난다. 당국은 기왕에 진행해온 '경영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 금융회사 경영진의 임기제한 여부를 포함시킬지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당국이 직접 나서서 임기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한 당국자는 "당국이 경영진의 임기를 정할 경우 곧바로 관치로 연결될 것"이라며 "외부의 공론화에 의해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될 경우에나 모범규준(베스트 프랙티스) 등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설령 법제화하더라도 언론 등을 통해 공론화가 이뤄진 후 임기제한이나 임원보수 등에 대한 여론이 비등할 경우에나 국회에서 수정안을 내는 형식으로 추진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고승덕(한나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가 행정지도를 통해 금융회사 경영에 간섭하는 것이 관치이지 법제화를 통해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관치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금융당국의 현 모습은 관치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일그러진 시장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이른바 '세련된 관치'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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