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유명무실' 벤처육성 정책

안의식 <경제부 차장>

[동십자각] '유명무실' 벤처육성 정책 안의식 국내 굴지의 S그룹 계열사 미국 지사장으로 활동하던 정모 사장. 그는 반도체나 유기EL 제작과정에서 사용되는 '증착 마스크' 기술을 갖고 국내에서 사업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귀국, 국내에서 법인을 설립했다. 초기자금 조달은 쉬웠다. 다니던 회사의 선배들이 정 사장과 사업 아이디어를 믿고 초기자금을 투자해줬다. 순조롭게 공장설립까지 마친 뒤 그는 기계를 추가로 들여오기 위해 2차 펀딩에 나섰다. 1차 펀딩이 쉬웠던 만큼 2차 펀딩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기술신보에 갔다. 보유하고 있는 기술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그 가치를 경제적으로 평가해 보증을 서주는 기술평가보증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접수자가 너무 많아 심사기간이 몇 달이나 걸린다는 말을 듣고 빨리 받을 수 있는 일반보증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매출을 좀더 키우고 오라는 답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창업한 기업에 변변한 매출이 있을 리 만무했다. 땅이나 집이라도 담보로 잡히면 보증서를 끊을 수 있었지만 공장 땅도 정부로부터 빌린 땅이어서 담보가치가 없었다. 다시 기술보증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술도 기술이었지만 정 사장의 대학졸업 학과가 문제였다. 정 사장은 경영학과 출신. "문과 출신이 무슨 기술벤처 기업을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정 사장은 "기술 자체보다는 포장이 중요했다"며 "엔지니어가 몇 명인지, 최고경영자(CEO)가 엔지니어 출신인지 여부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용보증기금으로 갔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 사장이 필요한 금액의 약 절반 정도만 보증을 서줄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벤처캐피털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여기도 반응은 냉담했다. 아직 햇병아리 창업기업이기 때문에 코스닥 상장이 멀었고 따라서 투자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 사장은 "이렇게 자금조달이 어려울 줄 몰랐다"며 "기술만 좋으면 쉽게 될 줄 알았는데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중소 벤처기업 육성은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 목표다. 고용과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실제 벤처인들이 부딪히며 느끼는 자금조달 상황은 정부정책 목표와는 한참 멀다. 입력시간 : 2005/08/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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