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권홍우(경제부 차장)"정부에 과제를 주는 연구기관 될것"
`정부에 과제를 제시하는 연구원으로 거듭나겠습니다`.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추구하는 KDI의 미래상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의 성격상 정부가 제시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게 주요 업무지만 능동적인 연구로 `정부로부터 받기보다는 정부에게 주는 연구기관`이 되겠다는 의지다.
대통령 경제비서관, 부총리 특보, 경희대 아ㆍ태국제대학원장 등을 지내 경제정책과 이론을 겸비한 신임 김 원장은 최근의 경제동향과 관련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당분간 현재의 거시경제운용 기조를 유지하면서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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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경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4~5월만 해도 경기 과열을 우려하며 회복세의 조정이 논의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하반기 경제 여건이 상반기보다 무조건 좋다고 전망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KDI에 오자마자 연구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게 이 문제입니다. 우리도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만 핵심 사안은 미국 변수입니다.
문제는 미국 변수가 국내에서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라는 점입니다. 개방된 경제는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해 한 발 앞서 대처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가 지금 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은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별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일각에서는 거시경제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까지 일고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 투기조짐과 물가 불안 심리를 잡기 위해 금리를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요.
▲현재로서는 지금의 기조를 바꿀 요인이 크지 않습니다. 오는 10월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지만 현재는 부적절해 보입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미래에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써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미국 연방제도준비 이사회(FRB)가 금리를 움직이지도 않은 상태에서 먼저 부산을 떨 필요는 없습니다. 미리 움직이면 오히려 엇박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KDI가 전망했던 연간 경제성장률 6.1%도 다시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한국은행에서 밝힌 연간 성장치 전망 6.3%는 KDI의 전망치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또 거품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미국경제의 더블 딥(이중침체)이 우려되기 때문에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병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건에서는 세제 등을 통해 거품을 조절하는 게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경기를 급격히 조절하거나 부양하는 것을 성급하다고 봅니다.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고 적당합니다. 그래도 미국 경제의 불안정 때문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해도 성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가도 불안하고 기업투자도 위축된 상태입니다. 수입도 내수용 자본재 수입이 늘어나는 등 내용이 좋지 않고 내년 이후 경상수지 적자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코어 인플레이션이 올랐지만 물가는 아직 안정적입니다. 설비투자는 혼조세라고 봅니다. 전반적으로 마이너스라고 해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떤 부문은 20~30%까지 올라간 것도 있습니다.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현 추세로 가면 흑자가 적자로 반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경기의 전환점이 언제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당분간 현재 기조를 유지하면서 불확실성과 미래에 차분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정부의 재정운영은 국내외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해 등으로 예상하지 못한 예산소요가 발생함에 따라 과연 균형재정에 매달릴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일고 있습니다.
▲정부는 2003년 균형재정을 약속했습니다. 약속은 지켜야 신뢰가 쌓입니다. 균형재정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거시경제 운영이 경직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만큼 돌출변수가 등장하면 대처능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를 중시해 균형재정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거시경제 운용의 탄력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지 여부입니다. 미래에도 지금 같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KDI는 향후 10년간(확인 필요) 5~5.1%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본이나 기술력을 가지고 성장률을 끌어 올리긴 힘듭니다. 때문에 노동력의 신규 발굴과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한 새로운 성장 요인의 확보가 중요합니다.
노동력 특히 여성인력의 활용을 통해 매년 1%씩만 10년간 올려도 성장률의 0.1% 증가가 예상됩니다. 여성의 학력은 상당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인력활용에 있어선 아직 뒤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또 총생산성을 끌어올려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개방과 자유화를 통한 경쟁이 그 핵심입니다. 제가 향후 1~2년간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기도 합니다.
-KDI의 연구 역량을 이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연구의 방향과 제도적 틀 마련에 대해 고민하겠다는 것입니다. KDI는 앞으로 모든 연구원들이 개인연구에 50%, 공동연구에 50% 투자하도록 유도할 방침입니다.
연구의 폭을 넓히고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종합적인 정책연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일관성 없는 논의를 모아 정부에 일관성 있는 정책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KDI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KDI가 제시한 것 외에도 수 많은 정책대안들이 여러 연구기관 등에서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KDI를 어떻게 끌고갈 계획이신지요.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하듯 정책을 내놓진 않겠습니다. 선진국처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부정책과의 연계성을 높여갈 계획입니다. 비전 2011의 경우 경제계획이 아닌 중요 과제들을 제시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은 건 정부와의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잇는 일 입니다. 정부는 KDI 제안을 받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피드백이 가능해집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국가 예산을 주요 재원으로 운영되는 KDI의 특성에 비추어 정부의 용역연구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부를 쳐다보며 과제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연구로 정부에게 방향으로 제시하는 연구기관으로 거듭나려고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KDI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연구원이라는 입지를 굳힐 수 있다고 봅니다. KDI가 지닌 연구원들의 자질과 인적 구성을 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인력을 갖고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10년간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정부에서 제시한 동북아 비즈니스 모델도 그 일환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2년간 한국에서 가장 큰 과제는 시장 개방 문제입니다. 이미 도하서비스 협상 등이 본격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협상이라면 무엇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서비스시장을 개방하느냐, 안하느냐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서비스가 한국에서 중요한 산업이 되느냐 마느냐를 판단해야 합니다. 농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극적인 입장이 아닌 적극적인 입장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큰 다툼 없이 협상에 성공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5년, 10년 동안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문제입니다.
동북아 비즈니스 국가방안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외적 압력에 의해,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등의 발상으로는 안됩니다. 일본의 경우 금융시장 구조조정 적기를 놓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논란이 많은 주5일 근무제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추세 자체가 산업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제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한 쪽으로만 밀어붙이다 보면 사회적 혼선이 올 수도 있습니다.
복지가 늘어난다면 사회적으로도 반사이익이 생겨야 합니다. 유럽국가의 경우 토요휴무제를 의무화했다가 암거래 등 부작용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경험과 부작용을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 /사진=신재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