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불확실성의 확실성
이현우 논설위원 hulee@sed.co.kr
참여정부에 정책불확실성은 아무래도 도깨비불인 듯싶다. 많은 전문가들과 기업들은 경제난이 내수침체와 투자부진의 문제이며 이는 정책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불안하니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이고 가진 사람들이 소비를 꺼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뭐가 불확실한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며 오히려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있다고는 하는데 보았다는 사람은 없는 게 도깨비불인데 정책불확실성이 정부에만 안 보이니 영락없이 도깨비불인 셈이다.
정부만 못보는 불확실성
그러나 일련의 정책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언행은 기업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 여당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말조차도 기관과 사람에 따라 다르다. 청와대와 내각, 내각에서도 부처간에 말이 엇갈리고 심지어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인데도 몇 달 전과 몇 달 후가 다르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이게 불확실성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심지어 불확실하다는 것 하나만 확실할 뿐이라고 말한다.
1가구 3주택자 중과세 시행시기를 둘러싼 당정청간의 엇박자는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추석 때는 강력한 사정활동으로 규제하더니 연말에는 소비진작 차원에서 권장하고 나선 선물 주고받기도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소비부진 상황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석달새 태도가 180도로 바뀐 것이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경기부양책과 공정거래법은 또 어떤가. 청와대 참모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는 장기주의이고 따라서 부작용 있는 단기부양책은 안 쓴다고 강조한다.
과연 그런가. 이미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 세금감면 등의 대책에 이어 연기금을 이용한 한국판 뉴딜 정책까지 들고 나왔다. 금리도 두 차례나 내렸다. 연기금의 경기대책수단 활용은 주무부처 장관의 문제 제기에서 알 수 있듯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국민들의 노후생활의 최후 보루인 국민연금을 정책적 목적으로 투입했다가 손실을 입어 재원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면 그 후유증은 참여정부가 부양책 불가의 근거로 제시하는 DJ정부의 신용카드, 부동산 대책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금리인하도 그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함으로써 중앙은행의 권위와 신뢰성 실추 부작용을 낳았다.
이렇듯 온갖 부양책을, 그것도 큰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는 수단까지 동원하면서도 부양책은 안 쓴다고 외치고 있으니 이런 모순이 없다.
공정거래법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에 대한 정부의 행보와 논리 또한 해괴하다.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우려가 있으니 완화해달라는 기업들의 애타는 호소에 정부는 처음에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무지르더니 나중에는 연기금을 동원해서 막아주겠다고 했다. 가능성이 없다면 연기금은 왜 동원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말과 행동에 일관성 있어야
정책 방향과 내용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두번째 문제이고 기본적으로 논리의 앞뒤가 안 맞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과연 정부가 경제활성화 의지를 갖고 있기나 한지 의구심을 갖게 마련이고 이런 상황에서 정책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리 없다.
경기전망이 불투명한데다 정책불확실성마저 있으니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적일 수 없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투자부진에 대해 기업가 정신 퇴조를 꼬집은 적이 있지만 그게 기업의 잘못일 수만 없다.
부총리도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 운전할 때 거북운행을 하지 엑셀러레이터를 밟을 리 없을 것이다. 기업가 정신을 灼歐?앞서 정책의 안개를 걷어내는 게 먼저이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언행일치와 정책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입력시간 : 2004-12-08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