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금융위원장 내정자가 18일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작심한 듯 금융권 공공기관장의 교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대대적인 물갈이가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고위관료들이 네트워크를 이용해 ‘전관예우’식으로 자리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와 동시에 내부 직원이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도 시사해 어떤 식으로든 지배구조 개편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안 자발적 사퇴 나올 듯=신 내정자는 교체 여부를 판단할 잣대로 새 정부와의 국정철학과 맞는지와 전문성을 들었다. 두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금융권 공기업 ▦금융위가 임명 제청하는 기관 ▦주인이 없어서 정부가 들어간 금융회사의 CEO를 바꾸겠다고 했다.
신 내정자는 “국정철학을 같이 하지 않는 금융기관장은 스스로 물러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그분들이 알아서 판단하는 문제”라고 답변했다.
신 내정자는 또 “교체가 필요한 대상자는 상반기중 교체해야 하지 않느냐”는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의 지적에 “그렇다”고 수긍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르면 이달 안에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금융계에서 우선 주목하는 인물은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이들은 아직 거취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언제든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지만 등 떠밀리는 듯 떠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7월에 임기가 끝나지만 이미 여분의 임기를 수행하고 있어 퇴진하더라도 별다른 논란의 소지가 없다. 안 이사장은 지난해 7월 임기 만료로 퇴임 기자회견까지 열었다가 신임 이사장 후보추천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 임기가 1년 연장됐다.
장영철 자산관리공사 사장이나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김용환 수출입은행장도 어떤 식으로든 금융당국의 검증작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행시 24회인 신 내정자나 최수현 금감원장(25회)보다 고시 선배인 CEO들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재신임 절차가 불가피해보인다. 현재 김정국 이사장은 행시 9회이고 진영욱 사장은 16회, 김용환 행장은 23회다. 장영철 사장은 24회다.
신 내정자는 이와 관련해 정무직 고위 공무원이 금융기관장에 취임하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신 내정자는 강기정 민주통합당 의원의 이 같은 지적에 “결코 좋은 모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앞으로도 전직 관료가 민간 금융사 등에 나가는 게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신 내정자는“‘이명박 낙하산’대신‘박근혜 낙하산’이 오는 게 아니냐”는 민 의원의 비판에 “금융위원장의 제청권을 통해 방지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을 금융인들에게 돌려준다”…내부 승진 예고=신 내정자는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묻는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야망 있는 젊은이들을 금융에서 흡수해야 하는데 지배구조상 젊은 사람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게 잘 안 돼 있다”며 “제도적인 틀과 도덕적인 측면으로 가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금융을 금융인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금융계에서는 신 내정자가 내부 승진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신한과 하나금융을 제외한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회장이 외부에서 오고 있다. 신입 직원이 은행원으로 입사해도 조직의 CEO 자리는 꿈꿀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임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돼 있다. 이와 관련해 롤모델이 조준희 기업은행장이다. 조 행장은 사실상 첫 내부 행장이다. 조 행장은 내부 승진으로 기업은행을 한 단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관료들이 행장직을 맡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