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탕웨이 사례가 한국에 주는 교훈


중국 출신 여성작가 장아이링(張愛玲)의 소설이자 리안(李安) 감독의 동명 영화인 '색, 계'는 중일전쟁 시절 중국의 친일 인사인 왕징웨이(汪精衛) 수하 첩보 책임자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대학생들의 얘기를 그렸다.

영화에서 주연 여배우 탕웨이는 육체 관계에서 시작된 사랑의 감정과 항일의 신념 속에서 고민하다 암살 프로젝트를 망치고 만다. 인간 내면 저 깊은 곳의 갈등을 표현한 탕웨이의 연기력과 박진감 있게 극을 끌고나가는 리 감독의 연출력이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지난 200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탕웨이는 이 작품 하나로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중국이 탕웨이에 보낸 반응은 '연예계 퇴출'이었다. 미리 찍어 놓은 작품과 CF까지도 모조리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일본 제국주의와 친일 괴뢰정부,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이유다. 탕웨이는 2010년에야 가까스로 중국 영화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세계인의 눈으로 볼 때 영화 '색, 계'에는 일제를 미화한 부분이 없다. 더구나 탕웨이는 사랑의 감정과 신념 사이에서 고민하는 캐릭터를 연기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의 시각은 다르다. 중국인들은 일본에 무력으로 투쟁했다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한다. 반면 일본과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민당 간부 왕징웨이는 한국으로 치면 이완용이나 비슷한 사람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왕징웨이의 수하를 한때나마 사랑한 캐릭터를 연기한 탕웨이도 중국인들의 감정을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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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저술가인 류양(劉仰)에 따르면 왕징웨이가 일본 제국주의에 협조해야 하는 이유로 든 논리들은 패배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본은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선진적이다' '중국은 일본과 싸우면 반드시 패배한다' '공산당을 빼면 중국인들은 일본인들과 진정으로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왕징웨이 이론의 핵심이다.

그런데 왕징웨이의 이론은 묘하게도 일제가 한국에서 했던 교육 방향과 대단히 비슷하다. '한국인은 열등하다' '조선 500년간 사대와 당쟁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천황의 국가이자 본질적으로 우수한 민족의 국가인 일본에 병합된 것은 축복이다' 이런 것들이 일제가 칼을 차고 한국 사람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다. 이는 식민지배를 인종적·역사적 관점에서 합리화한 것인데 왕징웨이의 주장뿐 아니라 한국 친일 인사들의 논리는 본질적으로 일제가 제시한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최근 일본은 고노담화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친일 발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의 강연 내용이 문제가 됐다.

교훈은 단순하다. 탕웨이를 퇴출시킨 중국처럼 과거사에 예민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지만 일제의 광범위한 인적·물적 수탈이 범죄행위였음은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적 자기비하는 일제가 심어놓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맹준호 산업부 차장 nex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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