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스위스 바젤에서는 흔히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이라 불리는 바젤협약을 개정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현재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신바젤협약(New Basel Accord)은 현행 협약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띨 것으로 보이며 예정대로 오는 2006년 말에 시행될 경우 우리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된다. 정부당국과 각 은행들도 이러한 파장에 대비하기 위해 일찍부터 준비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와 금융권의 발 빠른 대응과는 달리 기업들의 준비는 아직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자금담당 임원들을 만나보면 신바젤협약을 은행권만 신경 쓰면 되는 문제로 여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바젤협약의 세부 규정들을 살펴보면 기업의 자금조달 활동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규정들이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현행 협약 안에서는 기업대출에 대해 일괄적으로 100%의 위험가중치를 부과하고 있으나, 새로운 협약에서는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20%에서 150%까지 위험가중치를 차등 적용하고 있다. 이 규정을 적용할 경우 은행이 100%의 위험가중치를 부여받는 BBB급 기업의 대출을 회수하면 회수한 대출액의 5배에 달하는 금액을 20% 위험가중치를 부여받는 AA급 기업에게 대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두 기업간 대출금리 차이로 인해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향후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만은 명확하다.
또한 자산유동화채권에 대한 처리규정의 변경, 각종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위험가중치 세분화, 은행의 여신심사기능 강화 등을 통해 이번 개정안은 전반적으로 금융기관의 위험민감도(Risk Sensitivity)를 높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향후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자금조달이 까다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환위기 시절 금융권이 BIS 기준을 맞추기 위해 기업대출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운영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아픈 기억이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신바젤협약 개정이 그리 달갑지 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금융감독규정의 표준화는 세계적인 추세이며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유비무환의 자세와 적극적인 대응만이 예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다.
<강석인 한국신용정보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