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무가 이끈 조선군이 1419년(세종 1) 대마도를 공격한다. 전선 227척, 병력 1만7,000명을 동원해서다. 100여년간 일본 해적, 즉 왜구에 시달리던 한반도 정권이 강공책을 쓴 것이다. 이 해가 기해년이어서 '기해동정(己亥東征)'이라고 불렀다. 조선 건국을 전후해 대마도 공격은 3번 있었다. 앞서 1389년(공양왕 1년)에 박위가, 1396년(태조 5)에는 김사형이 각각 대마도를 쳤다. 세 번째 사건이 가장 유명한데 바로 기해동정이다. 고려 말 방어 위주에서 탈피해 적극 전법으로 나간 것이 효과를 봤다. 이로써 동북아 해안에서 왜구활동이 한풀 꺾이게 된다. 고려·조선 시대를 통틀어 일본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원 간섭기 2차례에 걸친 몽골·고려군의 침공이 유일하다. 이에 비해 대마도 원정은 빈번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대마도가 익숙했음을 반증한다. 기해동정 당시 아들 세종에게 왕위는 물려줬지만 상왕으로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태종이 한강변에서 이종무 함대를 사열한 곳이 용산구 한남동에 있던 제천정(濟川亭)이다. 지금은 아파트와 도로 사이에 끼어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