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헤지펀드] 탄생에서 몰락까지

헤지펀드가 국제금융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1년 국제통화를 고정환율로 묶어온 브레튼우즈체제에 균열이 가면서부터다.브레튼우즈체제가 무너지면서 2차대전 이후 미 달러에 고정됐던 국제환율이 변동제로 바뀌고 미국이 달러 불태환을 선언하면서 환율차를 이용한 거래가 가능해졌다. 헤지펀드들은 이때부터 단기간에 특정부문을 집중 투자해 이익을 올린 뒤 빠져나가는 이른바 「핫머니」를 운영하며 국제금융시장에 등장했다. 특히 지난 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엔이 기축통화로 부상, 각국 통화간 경쟁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헤지펀드로선 운신의 폭이 확대된 셈이다. 헤지펀드가 일반인에게 자신의 존재와 위상을 명확하게 인식시킨 계기는 지난 92년 영국 파운드화가 이들의 공격으로 단기간에 폭락한 국제금융사건을 통해서다. 당시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들은 영국 파운드화가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고평가됐다고 판단, 파운드를 대거 투매했다. 영국 재무부가 긴급하게 통화방어에 나섰지만 결국 이들의 파상공세에 무릎을 꿇으면서 헤지펀드는 국제금융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됐다. 특히 지난 95년과 97년 멕시코 페소화 및 태국 바트화가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폭락, 외환위기로까지 발전하면서 이들은 국제금융계의 「이단아」에서 「태풍」으로 자리잡는 최전성기를 맞게 된다. 헤지펀드들이 한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영향력 확대가 오히려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98년 러시아가 치솟는 환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국가채무 지급중단을 알리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러시아에 집중투자했던 헤지펀드들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존 메리웨더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부도직전까지 몰리면서 헤지펀드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주식시장이 지난해부터 급변동하고 있는 것도 헤지펀드의 몰락을 부추겼다. 첨단기술주를 발굴해온 투자펀드들이 1년에 3자리수의 수익률을 올리면서 투자자금이 빠져나갔으며 뒤늦게 뛰어든 기술주투자가 오히려 헤지펀드의 손실을 확대시켰다. 『주식시장이 충동에 좌우되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소형펀드 수익률이 상승하면서 헤지펀드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는 한 헤지펀드 운영자의 고백은 이들의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호정기자GADGETY@SED.CO.KR 입력시간 2000/04/30 20:00

관련기사



김호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