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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개혁 실패와 식량사정 악화로 북한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시장의 힘이 커지고 있다. 시장을 단속하던 인민보안원(경찰)의 단속도 보이지 않고 보안원이 단속하려 해도 40~50대 아줌마 상인들의 욕설에 망신만 당할 상황이라고 한다. 북한 당국이 시장과의 전쟁에서 다시 무릎을 꿇은 셈이다.
아시아프레스(아시아지역 무소속 언론인들의 네트워크) 김동철 기자가 북한에서 지난 6월 촬영, KBS가 18일 밤 보도한 동영상에 따르면 경찰청에 해당하는 인민보안부 트럭을 빌려 사람들을 실어나르며 불법영업을 하는 여성 운수업자가 뇌물을 요구하는 한 보안원에게 "별을 달면 다냐? 넌 뭔데"라며 거칠게 항의하고 가슴을 밀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보안원은 봉면만 당한채 "말 조심하라구"라며 꼬리를 내렸고, 트럭을 타려는 주민들이 가세해 보안원을 쫓아냈다.
◇‘사형 포고문’에도 불법 환전상 활개= 외환거래 사형 포고문이 내걸린 평양 근처 한 도시에서는 한 환전상이 "얼마나 바꾸려고요? 인민원은 1만2,000원"이라며 버젓이 외화 암거래를 시도하는 모습도 소개됐다.
평안남도 등에서는 자유를 달라는 전단지가 대량 살포됐다. 김동철 기자는 자기 마을 간부들을 비방중상하고 ‘간부들을 다 교체해야 한다. 자유를 달라’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닫았던 시장 문도 최근 다시 열렸다. "쌀은 480원, 밀가루는 43만520원인데 반년만에 10배나 올라 시장이 온통 생존경쟁"(시장 상인), "나라에서 인민을 위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거꾸로 못살게 군다"(북한 여성)는 불만이 튀어나왔다.
조선일보는 신의주 채하(彩霞)시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입수, 작년 12월 화폐개혁 이후 한산했던 북한 시장이 최근 화폐개혁 이전보다 더 활황이라고 보도했다. 채하동은 대중(對中) 무역 길목인 신의주시의 부자 동네다.
북한 내부소식통이 이달 초 촬영했다는 동영상에는 사기그릇 유리컵 수저 샴푸 세제 칫솔 화장품 고춧가루 생선 쌀 옥수수은 물론 선풍기 밥솥 샤워기 수도꼭지류 오토바이 헬멧 등을 매대(좌판)에 잔뜩 쌓아놓은 상인들이 "오마니, 보시라요" "아저씨 샴푸 안 사요?"라며 호객행위를 하고 손님들과 흥정을 벌이느라 시끌벅적했다.
◇시장 단속하던 인민보안원 자취 감춰= 매대를 돌며 국밥ㆍ냉면ㆍ음료수를 배달한 뒤 외상 내역을 적거나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는 상인의 모습도 보였다. 화폐개혁 이전 북한 시장에는 인민보안원들이 단속을 한다며 설치고 다녔지만 이 동영상에는 보안원 모습은 보이지 않고 완장을 찬 '관리원'만 조용히 매대를 지나갔다.
신문은 대부분의 공산품이 중국산이지만 중국을 통해 들어온 남한의 쿠쿠밥솥, 삼성 애니콜 손전화(휴대전화), LG 텔레비전, 화장품ㆍ의류 등도 몰래 판다고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화폐개혁 실패로 지난 2월 김영일 당시 총리가 사과하고 지난 3월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이 총살된 이후 북한 당국이 사실상 시장 통제의 손을 놓았다. 지난 5월까지 시장이 마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6월부터 풀리기 시작해 지금은 통제가 어려운 수준"이라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시장과의 전쟁에서 다시 무릎을 꿇은 셈이다.
화폐개혁 직후 주민들이 다시 굶어죽을 위기에 직면했는데도 당국이 배급을 주지 못하자 '시장이라도 막지 말라'며 거칠게 항의했고, 지금은 보안원이 단속하려 해도 40~50대 아줌마 상인들의 욕설에 망신만 당할 상황이라고 한다. 화폐개혁 이후 식량난은 북한 중심부에까지 확산돼 그동안 식량배급 걱정을 안했던 평양 근교에도 식량배급이 끊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