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위기의 한국 자동차… 돌파구 찾아라] <2> '최악의 러시아시장' 역발상으로 대응해야

위기일수록 투자 늘려야 회복기에 경쟁자 압도


루블화 가치 급락에 실적 먹구름… GM·폭스바겐 등 속속 시장 떠나

현대·기아차 매출·영업익 급감 속 공격적 마케팅으로 점유율 높여


생산 탄력조정·과감한 가격정책 등 신흥국 동시다발 위기도 대비해야


국제유가가 6년 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하고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자동차 업체의 실적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에 경고등이 들어오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가장 먼저 타격 받고 있는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 역시 판매대수와 매출·영업이익 모두 급감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수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 시장 전체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공세를 취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래야만 경기 회복기에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 줄고 영업익 급감=현대·기아차의 최근 러시아 시장 실적은 크게 악화했다. 현대차 러시아 법인(HMMR)의 상반기 매출액은 올해 8,799억원으로 29.2% 급감했다. 최근 3년 새 매출액이 1조원 미만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영업이익은 22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 기아차 역시 지난 2013년 상반기 2조원을 넘던 매출은 올해 상반기 8,661억원으로 줄었다. 영업이익은 2013년과 비교하면 4분의1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는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축소된 결과다. 지난해 러시아의 자동차 판매량은 249만대로 1년 전보다 30만대가량 감소했다. 올해 7월까지 판매량(91만3,181대)은 지난해보다 35%가량 적다. 러시아딜러연합(ROAD)에 따르면 판매 감소로 올해 안에 딜러점 1000여곳이 폐업하고 10만명이 실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러시아 경제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현재 국제유가는 2008년 이후 6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고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의 수출 중 석유와 천연가스가 전체의 60%를 차지해 유가 하락은 경제 전체를 멍들게 한다. 아울러 루블화 가치는 지난해 17일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달러당 66.45루블을 기록했다. 루블화 가치가 떨어지면 상대적인 원화가치는 올라간다. 그러면 한국에서 만든 차를 수출하기 어려워진다. 아울러 한국산 부품을 현지 생산공장에 공급할 때도 비용부담이 커진다. 이런 사정은 글로벌 업체가 모두 마찬가지다.


◇하나둘씩 떠나는 글로벌 업체들=상황이 이렇게 되자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하나둘 러시아 시장을 떠나고 있다. 팔수록 손해를 보는 회사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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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지난해 신차 판매를 중단했고 올해 중순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폐쇄할 계획이다. 또 연내 오펠 및 쉐보레 주요 모델을 철수시킬 계획이다. 폭스바겐 역시 판매를 줄이고 150명 이상의 감원에 나섰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올해 러시아 판매량은 GM이 63%, 폭스바겐그룹은 40.3%, 도요타는 32% 줄었다.

현대·기아차가 판매가 감소한 가운데서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대·기아차의 러시아 시장점유율은 2013년 13.7%에서 올 상반기 17%로 올라갔다. 이는 전체 2위에 해당한다. 글로벌 자동차 강자들이 손을 털고 나가는 사이 시장 점유율을 높인 것이다. 올 7월에는 러시아 전략 차종인 현대차 '쏠라리스'와 기아차의 '리오'가 나란히 러시아 자동차 시장 판매 1위와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연간 20만대 규모의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올 상반기 가동률은 상반기 112%를 기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GM과 폭스바겐의 딜러사를 현대·기아차가 적극적으로 흡수하면서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역발상으로 대응해야=전문가들은 한국 자동차 업계가 이 같은 상황에 역발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공세를 취해야 살아남아 향후 회복기에 과실을 딴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기아차는 최근 오히려 러시아 시장에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위기일수록 투자를 늘린다는 역발상 경영 철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국 자동차 업계가 동시 다발적인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지적인 경제 위기가 아니라 중국·러시아·브라질 등 상당수 신흥국이 동시에 위기에 빠지는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국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과감한 가격정책과 지역별로 차별화된 마케팅을 벌이는 등 지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팀장은 "러시아의 경제가 모라토리움 사태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6월 유럽연합(EU)이 경제 제재를 1년 연장했고 국제유가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중국·브라질 등 신흥국 상황이 동시 다발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출혈 정책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럽 전체 시장을 볼 때는 현대·기아차의 정체 상태가 우려된다. 올 상반기 현대 기아차의 유럽 전체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7.9% 증가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와 같은 5.9%에 머무르고 있다. 시장이 커가는 것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러시아 등 유럽 전체 시장 판매 전략을 되돌아보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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