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영국계 거대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대한 뇌물수사를 다른 제약사로 확대하며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16일 블룸버그통신 등은 중국 공안부가 지난주 GSK 중국투자공사 부사장을 비롯한 중국지사 경영진 4명을 뇌물제공와 탈세혐의로 체포, 조사를 벌인 데 이어 최소 4개 이상의 다국적 제약사를 추가 수사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불법ㆍ불공정거래로 터무니없이 오른 건강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강조하지만 일각에서는 다국적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이 커지자 당국이 직접 견제에 나선 것이라며 당국의 조사가 다른 업계로까지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불법ㆍ불공정거래로 급등한 약값을 낮추고 건강관리 비용을 줄이겠다고 칼을 빼든 만큼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조사는 뇌물공여ㆍ가격담합 등 다각도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GSK를 비롯해 머스크ㆍ노바티스ㆍ박스터 등 60개 제약사의 원가와 가격구조를 조사하고 있다.
내부고발로 촉발된 GSK 수사도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공안부는 이례적으로 수사 중인 사건을 브리핑하며 "GSK 간부들이 지난 2007년부터 약품 판매량을 늘리고 가격을 올리기 위해 700여개 여행사를 통해 정부 관료, 병원 경영진, 의사 등 전방위에 걸쳐 대규모의 뇌물을 뿌렸다"고 밝혔다. 공안부 조사에 따르면 GSK는 약값의 20∼30%를 뇌물로 제공하느라 원가 30위안짜리 약을 300위안으로 올렸다. 전체 뇌물규모는 30억위안(약 5,400억원)에 달한다.
일단 GSK는 중국 정부에 무릎을 꿇었다. 조사시작 시점에는 영국 런던 본사가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전일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바꿔 뇌물제공을 인정하고 중국 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다국적 제약사에 칼을 뽑아 든 것은 소득증대와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건강 관련 비용이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의 건강 관련 지출은 지난해 820억달러에서 오는 2020년 1조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의약품 가격 부담은 중국 정부가 사회안전망 비용으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고 자칫 물가상승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시진핑 정부의 의료개혁에 다국적 제약사가 장애물이 되는 점도 이번 수사와 조사의 또 다른 배경이다. 중국은 의사 급여가 낮은 사회주의식 의료체계로 의약품 관련 부패가 만연해 있고 다국적 제약사가 이러한 부패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이러한 조사가 제약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국적기업들은 중국 내 시장지배력이 급속히 커지자 정부가 직접 견제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담합조사를 받아 가격을 20%나 낮춘 네슬레ㆍ다농 등 다국적 분유업체들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2008년 이전까지 30%였지만 올해 60%까지 올라갔다. GSK는 지난해 중국에서만도 11억달러를 벌어들였고 다른 영국계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도 15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앞서 7일에는 공상총국이 무균종이팩 생산업체인 스웨덴의 테트라팩에 대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조사에 돌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상황에서 공안부가 이례적으로 GSK 브리핑에 나선 데 대해 "중국 정부가 제약사뿐 아니라 다국적기업 전체에 경고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언론들도 GSK에 대한 이번 조사가 앞서 분유와 마찬가지로 물가상승을 억제하려는 중국 당국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며 다국적기업들에 대한 불공정행위 조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경제일보는 "GSK의 뇌물수수 조사에 대해 다국적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중국 내 거래관행을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