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누구보다도 수출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산자부 업무 영역인 산업정책과 에너지 분야, 통상과 무역 부문을 두루 거쳤지만 특기 중의 특기는 통상과 무역이다. 어떤 업무를 맡든 수출과 연결하려고 애쓴다.
5년차 사무관으로 전자공업과에 근무하던 지난 77년, 이 장관은 국내 백색가전 시장에만 매달리던 업계를 설득해 수출에 눈을 돌리게 한다. 그 해 수출액은 처음으로 100억달러선을 넘었다.
별명 중 하나인 '야전침대'도 수출과 사무관 시절 붙은 것이다. 밤 늦게 일하다 보면 통금시간에 걸리기 일쑤. 아예 접이식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사무실에서 살았다. 야전침대는 수출과장 시절까지 이어졌다. 그때가 87년. 우리나라는 사상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맛봤다. 이 장관은 아직도 '흑자 원년'의 최일선 과장이었다는 점을 자랑으로 여긴다.
88년부터 91년까지 진행된 한미 슈퍼301조 협상과 섬유 및 철강 협상 등으로 이 장관은 해외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당시 이 장관은 우리 협상팀의 일원으로서 치밀한 논리와 특유의 집요함으로 협상을 성공시켰다.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칼라 힐스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협상이 끝난 후 '한국팀은 골든라인'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유럽연합(EU) 상무관 시절인 95년, 한 유럽국가와의 섬유협상에서 이 장관은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꺼낸 첫마디가 '당신들 WTO 규정 위반이다'였다. 상대측은 아연실색했다. 이 장관은 조문 하나하나를 들어가며 입장을 설명했다. 협상 이전에 밤새워 관련규정과 사례를 준비했기 때문. 한국은 협상 내내 주도권을 행사했다. 결국 당초 제시한 쿼터의 10배에 달하는 물량을 얻어냈다. 섬유업계가 동상과 공덕비를 세우겠다고 나설 만큼 예기치 못한 성과였다.
공직 일선에서 물러나 생산성본부 회장으로 일하던 2002년, 통상전권대사로 차출돼 EU와 조선협상을 맡은 것도 무역과 통상 전문가로서 이 장관의 진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수출과 통상에 관련된 이 장관의 궤적을 더듬어보면 수출 2,000억달러 돌파시점에 주무부처의 장관을 맡은 게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수출과는 연이 깊다. 이 장관은 수출한국의 장래를 확신한다. 머지않은 때 '수출 4,000억달러 시대'가 온다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