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테러보다 9ㆍ15(리먼브러더스 붕괴)가 미국에 더욱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 9ㆍ11은 세계 정치와 경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반면 9ㆍ15는 글로벌 위기를 재빠르게 극복한 중국이 본격적인 미국에 대해 도전에 나서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인들도 중국의 도전이 먼 미래가 아니라 현실임을 실감하게 됐다."(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과 중국의 세계경제 헤게모니 쟁탈전이 격렬해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동맹국인 미국ㆍ중국의 혈맹인 러시아가 가세하면서 경제 패권 전쟁은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동아시아지역의 경제패권을 차지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과의 대립은 필연적이다. 이들의 패권다툼은 마치 전쟁에서 육ㆍ해ㆍ공 전투가 벌어지는 것처럼 환율ㆍ무역ㆍ자원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최근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공방, 닭고기와 동파이프를 놓고 주고받기식 보복관세, 희토류를 둘러싼 신경전 등이 그것이다. 이런 구도에 일본은 지난 2004년 이후 6년 만에 환율시장 개입, 글로벌 통화전쟁에 불을 지폈다.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강대국으로의 도약을 노리는 러시아까지 가세해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는 4강의 경제 각축장이 되는 형국이다. 중국은 6월 타이완과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하면서 대중화 경제권에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막강한 화교세력 기반을 두고 있는 아세안(ASEAN)과의 FTA 체결로 '중화경제권'을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한국과의 FTA에 대해도 쌀 등 민감 품목을 양보하고서라도 성사시키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주 유엔 연설을 통해 "중국은 강대국이 된 후 패권을 추구했던 과거 강대국들의 전철을 절대 뒤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등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희토류를 지렛대로 일본을 단숨에 제압하며 자원무기화를 서슴지 않았다. 중국의 부상에 미국의 견제도 한층 격해지고 있다. 오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정계는 경기회복 둔화와 고실업을 중국 탓으로 돌리며 '중국 때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강경한 태도로 중국 측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 의회는 대중국 환율보복법안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와 유사한 '중국 때리기' 법안을 무더기로 쏟아내는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데비 스태비노 상원 의원(민주당)은 28일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신규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한편 국내 생산시설을 폐쇄하고 해외로 이전하는 업체에 조세 부담을 늘리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자원전쟁에서도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로 일본을 굴복시킨 것을 본 미국은 2002년 이후 환경보호를 위해 중단한 희토류 생산 재개하며 5년 내 자급자족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마련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러시아도 꿈틀거리고 있다. 러시아는 확인매장량 기준 원유 742억배럴(세계 7위), 천연가스 44조3,800억㎥(세계 1위), 석탄 1,570억톤(세계 2위)으로 세계최고 수준의 자원부국이다. 물리 등 기초과학과 우주항공 등 첨단기술 분야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기초과학을 활용, 첨단기술 상용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경제 헤게모니 쟁탈전은 한국에 있어서는 기회이자 위기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 적절한 균형감각으로 최대한의 국익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