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법이라고 하면 일단 어렵다고 인식하는 것은 법 해석에 앞서 법률용어 자체가 벽처럼 견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법률에는 일본식 한자어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분마(奔馬)' '결궤(決潰)' '대안(對岸)' '폐색(閉塞)' 같은 단어는 고치기로 해놓고도 5년째 그대로 쓰이는 단어들이다. 경찰관직무직행법 5조에 등장하는 '분마'란 빨리 달리는 말을 뜻한다. 위험발생 사태에 '광견ㆍ분마류 등의 출현'이라는 문구로 등장한다. 단어 자체도 낯설지만 현대사회에 말이 등장하는 것도 의아스럽다. 형법 184조에 나타나는 '결궤'는 '방죽이나 둑 따위가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제방을 결궤하거나 수문을 파괴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수리를 방해한 자'라는 표현을 '제방을 무너지게 하거나 수문을 파괴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수리를 방해한 자'로 바꿔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밖에 민법 229조의 '대안'은 '건너편 언덕이나 기슭', 같은 법 222조의 '폐색된'은 '막힌'이라는 단어로 고칠 수 있다.
속도가 느릴 뿐 케케묵은 한자어가 꾸준히 정비되고 있기는 하다. 지난해 하위법령 중 정비된 한자어 가운데 '징병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은 우리나라 법령의 한글화 작업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 규칙에서 '관해(寬解)'는 '완화'로 바뀌었고, '이학적'은 '신체검사', '수지'는 '손가락', '상지'는 '팔', '고식적인 치료'는 '임시변통의 치료'로 정비됐다.
어려운 행정용어로 지목됐던 '여입하다(다시 넣다)' '명의서환(명의변경)' '거마비(교통비)' '야수(숙박횟수)' 등 단어들도 관련법령에서 고쳐졌다. 예고기간을 거치고 있는 용어 중에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의 '안구진탕증(눈떨림 증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의 '비중격(코 사이 막)' 등이 한글표현으로 예고된 상태다.
법률용어를 쉬운 한글표현으로 바꾸는 것을 놓고 일부 학계에서는 신중론을 펴기도 한다. 단어의 선택이 해당 의미를 축소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좋은 법'이 '쉬운 법'이라는 큰 원칙에 동의한다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도 법률 한글화 작업에 좀 더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특히 민법ㆍ형법ㆍ상법 같이 일반 국민생활과 밀접한 기본법은 더더욱 알기 쉽게 발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례로 법무부가 상법 보험편을 쉽게 손보겠다고 하자 학계가 벌떼처럼 일어났던 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지킬 수 있는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가들만 이해하는 법이 아닌 국민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