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의 운치를 얘기할 때 흔히들 '먹의 정신성'을 거론한다. 하지만 전통화의 가치가 꼭 먹으로만 구현될 수 있을까. 동양화가 조환(52)은 지필묵을 내려놓은 대신 철판과 용접기를 집어들었다. 마치 필획과도 같은 철판들을 이어붙여 작가는 대나무와 산수 그림을 구현해 낸다. 그의 신작 30여 점이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전시 중이다. 전서체(篆書體)로 쓴 대나무 죽(竹)자를 수십 개 겹쳐 표현한 대나무 그림에서는 산들바람이 불어나오는 듯하다. 뾰족뾰족한 연속적인 선의 조합은 꿈틀거리는 산수를 만들어 냈다. 동양화의 생동감과 진중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먹을 쓰지 않았지만 수묵화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뉴욕으로 가 조소를 공부했다. 동양의 정신성에 조각의 손재주를 얻게 된 계기였다. 재료만 바뀌었을 뿐 작가가 추구하는 동양화의 정신성은 그대로다. 용접에 대한 사전계획이나 드로잉 없이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은 '일필휘지'의 동양화와 맥을 같이 한다. 액자 없이 전시장의 흰 벽 위에 그대로 작품을 걸어 마치 동양화의 여백의 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철판 작품 뒤로 드리운 그림자들은 먹의 번짐이 주는 여운 못지 않은 율동감을 선사한다. 전시는 12일까지 열린다. (02)733-5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