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佛·獨의 선택과 한국


2차 대전이 종료될 때만 하더라도 법은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와 개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고속 교통기관의 등장과 대규모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 일상생활에 편익과 더불어 대규모 위험을 양산함에 따라 법률도 차츰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왔다.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해상 항해의 안전을 도모하는 입법조치가 뒤따랐고 지난 1989년 알래스카 해협에서 유조선 엑슨 발데스호가 좌초, 원유가 대량 유출되자 이중선체 구조로 유조선을 건조하도록 의무화하는 국제규범이 마련됐다. 日 원전사고로 관련법 개정 불가피 원자력 부문에서도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TMI) 원자력 발전소 사고,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계기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각종 입법조치가 강화돼왔다. 설계기준에 따른 안전규제 요건과 절차의 만족 여부만을 점검하는 결정론적 안전성 분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원전 운전 및 사고이력ㆍ증상을 종합적으로 분석ㆍ평가해 사고를 방지하는 확률론적 안전성 해석 방법을 개발ㆍ도입하는 내용이 원자력법에 반영됐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입증된 기술을 건설 중인 원전에 접목, 원자로 계통의 신뢰도를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차세대형 원자로 개발 노력과 기존 원전보다 계통을 대폭 단순화하고 사고 대처에 자연현상을 활용함으로써 외부의 구동력을 요하지 않는 차차세대형 원자로 개발 노력이 진행돼왔다. 3월 자연재해인 쓰나미로 야기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발생원인ㆍ피해양상ㆍ규모 등에서 과거의 원전사고와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이에 따라 원자력 리스크에 대한 법적 규제를 어떻게 강화해 개정 원자력법 등에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법학계의 주요 관심사로 등장했다. 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는 관련 학술대회도 열렸다. 이제까지 국내외 각국은 원자력 리스크를 평가할 때 단일 부지에서 1기 이상의 원전사고는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전제하에 각국의 실정에 따라 적절한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러한 전제를 무너뜨렸고 각국의 원자력 관련 법과 국제협약을 획기적으로 개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구체적으로 원자력 안전규제 요건을 규정한 원자력법은 자연재해에 대한 안전대책을 강화해야 하고, 원자력 손해배상법은 배상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원전사고 발생시 방사능 방재대책도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원자력 관련 각종 국제협약도 이와 보조를 맞춰 개편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늘상 경험하는 일이지만, 원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원전 폐지론이나 아류적 주장이 고개를 들고는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원자력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원자력산업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프랑스, 정권유지 차원에서 일반시민의 반(反)원자력 정서에 호응해 원전 포기를 선언한 독일 정부의 대응은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리스크 감수하려는 의지 필요 원전을 가동하는 한 '리스크 제로(0)'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원자력 리스크를 예측하고 예측 범위 안에서 원자력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 관련법 개정 문제는 원자력 리스크에 대한 평가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자력 리스크가 통제 가능하다고 예측한다면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군기(軍紀)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병사들에게 총기 지급을 금지할 수 없듯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원자력 시대를 선도하고 창조하려면 예측 가능한 원자력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국민적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