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데타의 주체들이 이미 1980년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차기 대통령 주자로 밀기로 합의했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사진) 우당장학회 이사장이 20여년의 정치 인생을 기록한 회고록 ‘숲은 고요하지 않다’를 펴내면서 비사를 공개했다.
이 이사장은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출간기념회를 가졌다. 이 책에는 이 이사장이 육군과 중앙정보부를 거쳐 4선 국회의원 등을 지내면서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 등 한국 정치사의 주요 인물과 함께 겪은 일화를 담았다.
회고록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민정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1987년 당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옆에 앉았던 유학성 전 안기부장(당시 국회의원)이 “오늘이 있기까지 6년 11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유 전 안기부장은 당시 민정당 중앙집행위원이던 이 이사장에게 “1980년 6월 27일 오전 11시10분 내가 중앙정보본부장으로 가기로 하는 합의가 이뤄지던 그날 그 시간에 다음번 주자는 ‘노태우’라고 이미 모두 약속이 되었어요”라며 쿠데타 직후에 신군부에 차기 대권 시나리오가 있었음을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첫 민주적 정권교체의 산 증인이기도 한 그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일화도 몇 가지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이 1997년 12월 대통령 당선 직후 국회 야당 총재실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축하가 아닌 ‘강경한 힐난’을 받았다고 이 이사장은 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의 국제통화기금(IMF) 재협상 주장에 대해 “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 하루속히 당신이 한 말을 정정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통화를 마친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은 불쾌함이 역력했다.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임명됐던 이 이사장은 국정원이 출범하면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안기부 부훈을 “정보는 국력이다”로 고친 배경에는 음지라는 말을 끔찍이도 싫어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다고 밝혔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 김정일이 북한을 방문한 남측 대표단에게 전직 안기부장들을 언급하면서 “제일 형편없는 사람은 A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한테 선거 때 총 쏴달라고 요청했으니 한심한 사람 아닌가?”라고 ‘총풍 사건’을 언급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이 말을 대표단으로부터 전해 듣고 “북한이 우리 내부의 권력투쟁 때문에 외적에게 공포를 쏘고 연극을 해달라고 한 짓을 알고 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라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