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 에너지 업체인 E사는 지난해 11월 케이맨제도에 3,750만달러를 투자해 ‘GBO 인베스트먼트(Investment)’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여러 나라에 투자계획이 있어 포스트를 구축하기 위해 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했다”며 “한국보다 세금과 규제가 거의 없는 조세회피지역이 좋다는 자문을 해줘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버뮤다ㆍ케이맨제도 등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5곳의 조세회피지역 투자에는 E사와 같은 에너지 업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ㆍ정보통신ㆍ서비스ㆍ자원개발 업종도 있으며 근래에는 건설ㆍ부동산 개발업체들도 해외ㆍ국내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또 과거에는 대기업이 주로 이곳을 활용했으나 현재는 벤처기업 등 중소업체뿐 아니라 개인도 투자 대열에 합류하는 등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조세회피지역 투자, 이유 들어보니=게임 개발업체인 H사는 버진제도에 투자를 했다. 이유를 묻자 회사 관계자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중국 회사와 합작했는데 이 업체가 조세회피지역에 법인을 세워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운수회사인 대기업 H사는 300만달러를 투자해 버진제도에 회사를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중국에 석유를 운송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한참 떨어진 곳에 둥지를 튼 이유에 대해 “세금 등이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6년 9월에는 모 공기업과 민간 에너지 회사가 버뮤다에 LNG 법인을 설립했는데 한 관계자는 “A라는 지역에서 자원개발을 했는데 오는 2009년부터는 배당소득이 발생해 세금을 물어야 한다”며 “버뮤다의 경우 조세가 면제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D사는 국내외 주식투자를 위해 조세회피지역에 지주회사를 설립했고 S건설사 등 부동산 업체들은 중동ㆍ우리나라 등의 부동산 개발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조세회피지역 투자 급증 원인에 대해 “세금 회피도 한 목적이고 무엇보다 돈을 송금하고 수신하는 데 규제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며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선진 헤지펀드들의 투자기법을 터득하면서 최근 들어 투자를 더욱 늘리는 것 같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조세회피지역 투자, 10건 중 4건 케이맨제도=조세회피지역 투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특정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00~2006년 국내 기업ㆍ개인의 5곳 조세회피지역 투자는 총 88건이다. 7년간 진행된 투자지역을 살펴보면 이 기간 동안 10건 중 4건이 케이맨제도에서 이뤄졌다. 세부적으로는 룩셈부르크가 8건으로 9.1%를 보였다. 마셜제도는 3건(3.4%)으로 가장 낮아 한국 투자자에게 인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버뮤다도 8건(9.1%)에 불과했다. 반면 버진제도는 33건으로 37.5%, 케이맨제도는 36건으로 40.9%를 차지했다. 이들 두 지역을 합하면 총 69건으로 비율로는 78.4%에 해당된다.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케이맨과 버진제도가 조세회피지역 중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기업들이 몰리는 데는 이런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해외투자 확대, 조세회피지역 투자 더 늘어난다=정부의 해외투자 확대 등으로 조세회피지역 투자는 앞으로 증가속도가 더욱 가파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세금도 없고 규제도 전무해 기업 입장에서는 경쟁력 제고 등 여러 면에서 조세회피지역 투자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세회피지역 투자가 한국경제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적지않다는 점. 조세회피지역 내 법인이 불법 창구로 활용될 수 있는데다 세수 감소 등 여러 면에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